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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종교/역사

위대한 유산(遺産) 한자의 기막힌 발견 저자 조옥구의 한자편지. 012. 길(吉), 도(道)


 

 

위대한 유산 漢字, 고대로부터의 편지 012. 길(吉), 도(道)


 

길(吉), 도(道)


길을 걷다가 ‘도를 아십니까?’라고 물으며 불쑥 나타난 사람 앞에서 ‘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모른다고 해야 하나’ 순간 머뭇거리다가 외면하고 지나쳐버린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합니다.
‘도가 무엇이지?’. ‘나는 정말 도를 알고 있는가?’


‘도’에 대해서 알려면 ‘도’와 ‘道’로 표기되는 내용을 살펴보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하고 ‘道’를 찾으니 ‘길 도’가 있고 덧붙여서 ‘이치’, ‘근원’, ‘방법’, ‘통하다’라고 되어있습니다.
‘길 도’란 ‘길을 도라고 한다’라는 말이므로 행길, 골목길, 기차길, 뱃길, 비행기길… 등을 떠올려보지만 덧붙여진 ‘이치’, ‘근원’… 등을 생각하니 단순히 눈에 보이는 길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노자께서는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인위(僞)가 많아지면 도(道)에서 멀어진다”


‘僞(거짓 위)’가 ‘도(道)’에 상대되는 개념이라면 ‘도(道)’의 의미는 ‘爲(할 위)’와 통한다고 볼 수 있는데, 과연 ‘道’와 ‘爲’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요?
‘길’을 나타내는 한자들을 찾아 보았습니다.


永(길 영; yǒng) : 세상 길은 영원(근원, 우주)과 연결되어 ‘길다’
→ ‘永’은 ‘물 길’을 뜻합니다. ‘泳’자가 ‘헤엄치다’라는 의미를 갖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세상을 보는 여러 방법 중에는 ‘물’을 위주로 ‘물의 길’을 생각해보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 몸은 70%가 물이며, 우리는 매일 매일 많은 양의 물을 섭취하고 배설합니다.
   우리 모두는 물이 통하는 길입니다.
   물의 입장에서 보면 ‘너와 나’는 결코 분리된 별개의 것이 아닌 하나입니다.
   ‘물길’은 세상 긴 것의 상징입니다. 물로 우리 모두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道(길 도; dào) : 우주의 움직임, 하늘의 섭리, 하늘이 가는 길이 도
→ ‘道’자는 직역하면 ‘머리(首)가 가다(辶)’라는 뜻이지만 머리(首)는 곧 하늘을 의미하
   므로 ‘道’는 ‘하늘의 작용’을 의미합니다.
   한자를 만든 주체들은 ‘머리’에는 하늘이 내려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손은 머리의 지시에 따르므로 머리와 손을 하늘이 순환하는 통로로 보았습니다.
   ‘하늘→머리→손’의 관계를 특별한 ‘셋’의 관계로 보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래서 ‘머리(首)’는 언제나 ‘하늘과 머리’를 동시에 나타내는 것입니다.


吉(길할 길; jí) : 씨앗에서 싹이 나서 좋다, 갖힌 곳에서 나갈 길이 생겨 좋다
→‘吉’자는 ‘솟아날 구멍이 있다’라는 우리 속담과 같은 내용의 글자입니다.
   사면이 닫힌 공간에서 벗어날 길이 생겨서 좋다, 돈이 궁색하여 힘들 때 돈을 구할
   길이 생겨서 좋다, 생명의 근원인 씨앗에서 싹이 돋았으므로 좋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길’의 의미입니다.
‘길’은 ‘긴 것’이고, 통하는 것이며, 하나가 되는 것이므로 ‘영(○)’과 같으며, 길이 있으므로 좋은 것이며, 결국은 근원(=우주)과 통하는 것이므로 ‘길’을 ‘근원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근원으로 가는 길에는 여러 장애물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 장애물을 극복하고 원만하게 목적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길가에 세워진 푯말(이정표)은 바로 길을 가는 나그네를 비쳐주는 ‘해’입니다.
‘해’를 이용해서 푯말(이정표)을 나타내는 것은 ‘길’이 원래 ‘하늘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고대인들의 배려에 다름 아닙니다.


桓(푯말 환; huán) : 하늘에 해가 떠있어 환하게 비쳐주는 것처럼 길을 알려준다는 의미
楬(푯말 갈; jié) : 해가 내려와 있는 것과 같다는 의미
爲(할 위; wéi) : 위 하늘이 하는 것, 해가 하는 것이라는 의미


세상에는 수 많은 질서가 있습니다.
곤충계의 질서가 있고, 식물계의 질서가 있으며 인간 세계의 질서도 있고 지구와 우주의 질서도 있습니다.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은 이 질서의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질서라는 면에서는 모두가 각각의 가치를 가졌을 것이지만 100년을 사는 인간 세계의 질서와 하루를 사는 하루살이의 질서가 같을 수 없는 것처럼 질서 간에도 위계가 존재합니다.
이 위계를 인정하고 보다 근원적인 질서를 찾아가는 길이 소위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道’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주 안에 가장 큰 질서를 모색하고 그 질서를 찾아가는 ‘길’이 ‘도’입니다.


우리가 ‘도(道)’를 알아야 하는 까닭이 이것입니다.
큰 질서를 따르는 것이 최선의 삶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최상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큰 질서를 거슬리고 역행하는 것이 바람직한 삶이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런 삶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여름에 시원한 옷을 찾고 겨울에 따뜻한 옷을 입는 것 하나도 우리 개개인의 질서보다 더 큰 질서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 질서를 따르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근원적인 질서를 찾고 그 질서에 동참하려는 자를 ‘구도자(求道者)’라 한다면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이미 ‘구도자’입니다.

 

 

 

<글/趙玉九/‘한자의 기막힌 발견’의 저자>

 

 

 

'한자의 기막힌 발견' 의 저자 조옥구교수께서  ‘한자이야기’를 시작하면서를 본격적으로 연재하기 시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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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러한 것들이 사전에 양해를 얻고 상의를 나눈 것이 아니라 조옥구교수님께 불편을 드릴지도 모릅니다만, 그냥 내 지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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