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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종교/역사

017 설 위대한 유산(遺産) 한자의 기막힌 발견 저자 조옥구의 한자편지

 

 

위대한 유산 漢字, 고대로부터의 편지 017. 설

 

 

‘설’


세상 만물의 예외 없는 특징 중 하나를 꼽으라면 자전(自轉)과 공전(空轉)을 들 수 있겠는데, 모든 존재들은 각기 자신의 고유한 질서를 가진 동시에 또 어딘가 다른 차원의 질서에 예속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 만물의 운명이며 자전(自轉)과 공전(空轉)의 내용입니다.
태양과 지구의 관계에서 보면 지구는 매일 한 바퀴를 돌면서 1년에 한 바퀴를 도는 태양의 질서에 예속되어 있는 것이며, 태양과 지구가 그러하듯 지구와 인간의 관계가 또 그러하고 인간과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장부(臟腑), 세포와의 관계가 또 그러합니다.


층층의 구조 속에 자전과 공전을 하는 것이 우주의 질서 체계이므로, 이 질서에 속해있는 우리는 이미 우주적 존재인 것이며,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문자 역시 자연스럽게 이 질서와 체계를 따르게 되어 우리말과 문자의 근원적인 의미를 알고자 한다면 우주적 관점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주적 존재로써 하루의 시작을 ‘아침’이라 부르고, 새 해의 첫날을 ‘설’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또 새 해를 맞이하며 새 ‘설’을 맞이합니다.
‘설’ 의미는 무엇이며 우리는 왜 이 날을 ‘설’이라 부르는 것일까요?


‘설’이라고 하면 먼저 ‘낯설다’, ‘설익다’, ‘어설프다’ 등이 떠오르는데, 이 쓰임들을 보면 ‘설’은 무언가 ‘익은’ 상태를 향해서 나아가는 과정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과가 익었다’는 말은 ‘사과가 해처럼 붉게 되었다’는 말이며, ‘고기가 익었다’는 말은 ‘고기(사물)가 끊는 물(불)과 같은 상태가 되었다’는 말이고, ‘익숙하다’라는 말은 ‘새가 날아서 해로 갔다(習)’는 말인 것처럼, 땅이 하늘과 하나가 되는 것, 물이 불과 같이 되는 것, 세 번째인 만물이 첫 번째인 하늘과 하나가 되는 것이 ‘익’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만물의 삶은 ‘익는 것’이 목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과가 익어가듯 고기가 삶아지듯 날개가 해와 같아지듯 하늘과 하나가 되는 과정에 있는 것이 삶입니다.
이 과정에서 아직 다 익지 않은 것이 ‘설’입니다.
해가 바뀌고 처음으로 맞게 되는 날은 그래서 ‘설’날입니다. 아직 낯이 익지 않아서 낯선 날입니다. 새 날입니다. 지난 해도 아니고 완전히 새 해도 아닌 아직 낯선 날입니다.
몇 몇 한자를 통해서 ‘설’의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舌’자는 ‘혀 설’자로, 입 속의 혀를 생각해 보면 ‘설’의 의미를 추측할 수가 있습니다. 혀는 서있는 것일까요 누운 것일까요? 서 있는 것도 아니고 누운 것도 아닌 이것이 바로 ‘설’의 의미입니다. ‘혀’를 ‘설’이라 부르는 것은 혀의 이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雪’은 ‘눈 설’인데, 눈은 있는 것일까요 없는 것일까요?
비처럼 하늘에서 내려와 하얗게 세상을 덮어버리기는 하지만 해가 뜨면 곧 녹아버리는 것이 눈의 속성입니다. 손에 잡히는 것이 있긴 하지만 곧 녹아 사라지는 이것이 ‘눈’을 ‘설’이라 부르는 까닭입니다.


사람 이름으로 사용된 ‘설(卨)’도 있습니다.
‘설(卨)’은 제곡 고신씨의 부인 간적이 제비 알을 삼키고 낳은 아들로써, 순(舜)임금의 명으로 우(禹)와 함께 치수를 맡아 처리한 공로로 상(商)지방에 봉해진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훗날 그의 후손 가운데 ‘탕(湯)’이 나타나 하(夏)나라의 폭군 걸(傑)을 쫒아내고 ‘은(殷)’나라를 세우게 되어 ‘설(卨, 契이라고도 함)’은 은나라의 시조가 되는데, ‘제비알을 먹고 낳은 아들’이라는 태생 때문에 ‘卨’은 ‘설’이란 음(소리)을 갖게 된 것입니다.


‘卨’의 모양을 통해서 ‘설’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卨’자는 ‘卜’과 ‘咼’로 이루어져 있는데, ‘卜(점 복̇)’은 ‘하늘과 세상을 연결한다’, ‘하늘의 길흉 징조를 세상에 알려 준다’는 의미이며, ‘咼(입 비뚤어질 괘)’는 ‘아구가 맞지 않는다’ 즉 ‘부정(否定)’의 의미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卨’은 ‘정상이 아닌 방법으로 하늘에서 온 사람’의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만든 글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알’을 먹고 태어났다고 하는 것은 고대 태양족의 혈통을 나타내는 소위 난생설화(卵生說話)의 설화식 표현이며, 이런 배경으로 인해 ‘卨’은 ‘설’이란 음(소리)을 갖게 된 것인데, 고대에 ‘설’을 이름으로 사용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오늘 우리들로써는 주목할 만한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21세기 지구상에 ‘설’을 ‘설’이라 사용하는 사람들이 오늘 우리들이며 이 ‘설’과 동일한 의미와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 고대 순임금 시기에도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설’을 맞이하며 ‘설’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설’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아직 익지 않은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해와 일치하지 않는 한, 하늘과 일치를 이루지 못하는 한 우리는 설익은 존재들입니다.
설익은 과일이 익기 위해서는 마지막 한줌의 햇빛이 필요하듯이 우리 존재들이 익어가는 데에는 한 가닥 하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늘의 도움으로 익어가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익어 하늘로 가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관련한자】

舌(혀 설; shé) ; 누운 것도 선 것도 아닌 입 속의 혀
雪(눈 설; xuě) ; 비처럼 와서 손에 잡히기는 하지만 곧 녹아버리는 눈
卨(사람 이름 설; xiè) ; 비정상적으로 알에서 내어난 사람
說(말씀 설; shuō) ; 서있는 것처럼 입에서 쏟아져 나온 말
設(베풀 설; shè) ; 물결 바람결처럼 잠시 베픈(진열한) 것
卜(점 복; bǔ) ; 하늘이 내려오다, 하늘에서 내려오다, 하늘의 징조라는 의미
咼(입 비뚤어질 괘; guō) ; 아구가 맞지 않는다, 잘 맞지 않는다, 부정(否定)의 의미

 

 

<글/조옥구/한자의 기막힌 발견의 저자>

 


  

'한자의 기막힌 발견' 의 저자 조옥구교수께서  ‘한자이야기’를 시작하면서를 본격적으로 연재하기 시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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