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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종교/역사

019 홍익인간(弘益人間) 위대한 유산(遺産) 한자의 기막힌 발견 저자 조옥구의 한자편지

 

 

위대한 유산 漢字, 고대로부터의 편지 019. 홍익인간(弘益人間)


홍익인간(弘益人間)


‘홍익(弘益)’이 ‘해의 내려옴(弘)’과 ‘그릇에 넘치도록 가득 참(益)’의 뜻으로, ‘해’와 ‘세상’의 관계를 배경으로 만들어 졌으며 ‘살림’의 의미라는 것은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습니다.
우리 한겨레의 건국이념이며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인 ‘홍익(弘益)’에서 ‘해’가 발견되는 것은 우리 선조들이 해를 중심으로 세상 모든 개체 간 관계를 체계화했기 때문이며, 언어와 문자 또한 이 체계에 따라 그 범주 안에 있을 것이므로 우리말과 문자의 바른 이해도 해를 중심으로 한 논리적 체계에 접근하는 것이 관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홍익(弘益)’과 ‘홍익인간(弘益人間)’을 통해 부분적이나마 우리 겨레의 사고 체계와 우리말의 얼개를 살펴보려 합니다.


앞서 ‘홍익(弘益)’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우리는 ‘홍익’보다 ‘홍익인간’에 더 익숙합니다. 그리고 풀이합니다.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 또는 ‘크게 사람을 이롭게 한다’라고.
과연 ‘홍익인간’의 ‘인간’이 단순히 ‘사람’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홍익’에 ‘인간’을 더하여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 쓰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같은 꽃이라도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각각 다르게 보이는 것처럼 ‘관점’은 사물의 실체에 접근하는 통로인데, 우리 선조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사고의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사물을 일관되게 ‘셋’으로 구분해서 보는 것입니다.
‘해’를 ‘해-햇살-김’으로, ‘사람’을 ‘마음-살(몸)-기운’으로, ‘활’을 ‘활-화살-화살촉’으로, ‘임금’을 ‘임금과 제후와 병사’로, ‘털’을 ‘마음-살(몸)-털’로, ‘옷’을 ‘마음-살(몸)-옷’으로, ‘손’을 ‘하늘-머리-손’으로, 바퀴살을 ‘중심축-바퀴살-겉 테’로 보는 것처럼 ‘셋’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은 가능하면 ‘셋’으로 나누어 보곤 했습니다.


‘셋’은 이 세상을 ‘하늘-땅-만물’의 세 요소로 나누어 보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이 셋이 모여야 비로소 온전한 세상이 된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래서 ‘셋’을 갖추면 ‘완전한 것’, ‘셋’이 있어야 ‘완전한 것’이 되는 것이며 지금도 어떤 개념을 설명할 때 적어도 3가지 측면에서 고려한다는 소위 ‘3요소’는 그 흔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나 사물을 꼭 ‘셋’으로 보아야 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나’, ‘둘’ 또는 ‘넷’, ‘다섯’, … ‘열’ 등은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다만 ‘셋’의 효용성을 체득한 결과로 ‘셋’의 쓰임이 발달한 것이며, ‘일이삼(一二三)’, ‘원방각(○□△)’, ‘주빙수(丶冫氵)’, ‘천지인(天地人)’ 등은 그 흔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향으로 인해 ‘홍익’을 ‘성통공완(性通功完)’, ‘재세이화(在世理化)’, ‘홍익인간(弘益人間)’ ‘셋’의 관계로도 나타냈던 것입니다.
때문에 ‘홍익인간(弘益人間)’은 이들 ‘셋’의 논리체계로 보아야 비로소 온전한 개념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며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성통공완(性通功完)→하늘(天, 一, ○, 丶)의 속성=도(道)
재세이화(在世理化)→땅  (地, 二, □, 冫)의 속성=덕(德)
홍익인간(弘益人間)→만물(人, 三, △, 氵)의 속성=인(仁)


성통공완(性通功完)은 본성을 통해 근원과 하나가 된다는 의미에서 ‘도(道)’의 개념이며,
재세이화(在世理化)는 깨우친 ‘도(道)’로 세상을 보살핀다는 의미에서 ‘덕(德)’의 개념이며,
홍익인간(弘益人間)은 ‘도(道)’와 ‘덕(德)’의 작용 또는 실천이라는 의미에서 ‘인(仁)’의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仁’은 ‘二를 닮았다(亻)’라고 풀이할 수 있으며, ‘二를 닮았다’라는 말에서는 ‘一’과 ‘三’을 떠올릴 수 있는데, ‘一’은 이미 ‘二’속에 내포된 것이므로 ‘二를 닮은 것’은 ‘三’을 의미하는 것이 되어, ‘仁’과 ‘홍익인간’과 ‘세 번째’의 관계를 뒷받침한다고 하겠습니다.
‘仁’과 ‘人’과 ‘三’은 동일한 배경을 가진 글자들인 셈입니다.
(도(道), 덕(德), 인(仁)에 대해서는 추후 설명 예정임)


이렇게 구분하고 나면 ‘홍익인간’의 ‘人’이 단순히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만물을 포함하는 개념이라는 것과 ‘仁’자를 ‘인’으로 발음하게 되는 까닭을 알 수가 있습니다.
결국 ‘도(道)’와 ‘덕(德)’과 ‘인(仁)’은 하나의 실체를 구성하는 세 요소인 것입니다.


이런 구조이지만 ‘성통공완’이나 ‘재세이화’는 점차 소홀히 취급되고 ‘홍익인간’이 홀로 한겨레의 정신적 가치의 상징인 것처럼 전해지는데, 이것은 ‘세 번째’를 들면 그 속에 ‘첫째’와 ‘둘째’가 섞여 있다고 보는, 소위 ‘천지인’적 사고의 결과인 것입니다.


천지인적 사고에서 보면, ‘셋(三)’ 속에는 ‘하나(一)와 둘(二)’이 담겨 있기 때문에 ‘하나를 들면 셋이 담겨 있고 셋이 모이면 하나로 돌아간다(執一含三 會三歸一)’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용어 속에는 ‘성통공완(性通功完)’, ‘재세이화(在世理化)’의 의미가 내포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仁을 행하려면 먼저 도덕적인 사람이어야 한다’, ‘살림을 잘 하려면 도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가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도(道)와 덕(德)이 없는 인(仁)은 진정한 ‘仁’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도(道)와 덕(德)을 먼저 갖춘 다음에야 비로소 ‘인(仁)’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도(道)를 먼저 갖춘 다음에 덕(德)이 있고 도덕(道德)의 실현이 곧 인(仁)이 되는 것입니다.
이들의 체계가 그러합니다.


‘홍익(弘益)’과 ‘홍익인간(弘益人間)’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용어에 대한 바른 이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겨레의 정체성을 찾고 한국인의 한국인다운 특성, 한국인의 국민정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겨레의 세상 만물(萬物)에 대한 이해와 역할, 삶의 지표가 된다는 점에서 ‘홍익(弘益)’과 ‘홍익인간(弘益人間)’의 미래적 가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글/趙玉九/‘한자의 기막힌 발견’의 저자>

 

 

 

 

'한자의 기막힌 발견' 의 저자 조옥구교수께서  ‘한자이야기’를 시작하면서를 본격적으로 연재하기 시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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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러한 것들이 사전에 양해를 얻고 상의를 나눈 것이 아니라 조옥구교수님께 불편을 드릴지도 모릅니다만, 그냥 내 지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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