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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풍경이야기

논산명소 송불암의 미륵불과 절하는 소나무

 

논산명소 송불암의 미륵불과 절하는 소나무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일로 발길을 움직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 논산 나들이가 그러합니다.

  

이곳 계룡산에서 화가로 활동을 하다가 강원도로 이주를 한 계룡산 화가 산새도 정영진 화백과 토지 문제로 카톡을 하다가 갑자기 치맥 어떠냐고 묻습니다.

 

잉???

강원도가 아닌가?

 

그러고 계룡면의 치킨가게에서 만나 그 동안의 이야기를 나누다 논산시 연산면의 사찰에 탱화 작업을 하기 위해 잠시 와 있다고 하면서 암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멋드러진 소나무와 논산 은지미륵보다 연대가 오래된 미륵불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호기심은 다음날 바로 논산시 연산면으로 달려가게 만들었습니다.

ㅎㅎㅎ

그.런.데...
이날 계룡도령의 카메라 셔터박스가 고장나 버려 똑딱이로 사진을 남겼답니다.​

  

  

송불암[松佛庵]은 논산시 연산면 화암리 함박봉 아래 자리잡고 있으며 고려시대에 창건한 석불사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그 아래에 1946년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에 살았던 동상태의 어머니가 2칸의 민가로 송불암을 건립하였고, 1970년대부터 승려 경연이 주지를 맡고 있는데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83호인 미륵불과 소나무가 이를 보호하듯 덮고 있는 모습이 특이 해 송불암이라 이름지었다고 합니다.

 

 

2차선 주 도로에서 입구까지는 150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 호젓함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송불암은 뒷쪽으로 함박봉이 보이며 일주문이나 사천왕문 없이 바로 대웅전과 요사채로 연결되며 좌측의 산신당 방향으로 미륵불과 논산시목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250년 된 소나무가 멋드러진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답니다.

 

위 사진의 길을 따라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송불암 대웅전은 2000년 전축된 것이라는데 정면 3칸, 측면 3칸 크기의 맞배지붕 형식의 웅장한 느낌의 건축물입니다.

 

 

대웅전 앞에는 작은 연못이 하나 있는데 물속의 연잎만으로도 한여름의 정취를 상상하기에 충분한 듯 합니다.

 

 

대웅전으로 들어서면 중앙 불단엔 비로자나삼존불을 가운데 모시고 협시보살로 왼쪽엔 석가모니불, 오른쪽엔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법당 왼쪽에 따로 단을 만들어 지장보살좌상을 모시고 있는 점인데 예전에 본존불로 모셨던 보살이라고 합니다.

 

대웅전의 오른쪽 끝 벽을 바라보자 새긴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목각신중탱이 눈에 들어오는데 정교한 새김질이 여간 정성을 들인 것이 아닌 듯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특이한 모습의 산신당 현판입니다.

 

산새도 정영진화백의 솜씨인데...

몇십년 혹은 그 이상의 세월이 흐르면 어떻게 변화할지 기대가 됩니다.

^^

 

 

산신당의 탱화인데 다른 절집의 산신각 산신도와는 그림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리고 제단에 정성을 다해 조각을 한 모습도 도드라져 보이구요.

^^

 

 

하지만 사실 송불암의 진정한 볼거리는 대웅전 좌측 산신당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아래로 자라는 노송과 미륵불이라 하겠습니다.

 

소나무가 부처님께 절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잘 알려진 사찰. 논산 함박봉의 송불암은 소나무와 미륵부처가 묘한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지는 곳입니다.

 

 

원래는 송불암 미륵불을 보호하듯 마치 우산이라도 씌운 듯한 모습이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미륵불이 소나무를 이고 있는 것 처럼 보여 2000년 지금의 자리로 송불암 미륵불을 옮기고 소나무의 형태는 마치 미륵불에 절을 하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답니다.

 

원래의 모습이 궁금하시면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옮기기 전 소나무 아래 석불모습 보기

 

 

소나무 아래에는 임진왜란 당시 불타 사라진 석불사의 부재를 모아 탑처럼 쌓아 두었는데 그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소나무 사이로 미륵불의 모습이 보이나요?

 

 

송불암 미륵불[松佛庵 彌勒佛]은 높이 4.25m, 둘레 1m의 크기인데 석불사라는 옛 절에 안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임진왜란 당시 불에 타 없어졌다고 전하는 석불사는 지금의 자리에서 동쪽으로 약 50m 들어간 산기슭에 있었다고하며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8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불상은 입상(立像)이며 왼손을 가슴에 대고 오른손은 몸의 측면에 붙였는데 표정은 근엄하며 머리에 사각형의 보관을 이고 있고 보관 위에는 연꽃 봉오리가 있고 고려시대 말기 또는 조선시대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송불암 미륵불을 보러 온 사람들의 대부분이 미륵불을 보고나면 미륵불 주변을 돌며 무언가를 찾는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아래의 사진에서 보듯 한족 눈의 돌이 빠져 나간 것처럼 보여 그 빠진 돌을 찾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눈의 돌을 찾으면 그 어떤 소원도 이루어진다고 소문이 나기도 했다니 재미납니다.

^^ 

 

 

송불암 미륵불[松佛庵 彌勒佛]을 은진미륵보다 앞선 것으로 추정하는데에는 그 만한 이유가 있는데 바로 옷의 주름을 세세하게 표현한 것 때문입니다.

 

원래 고려불상들은 세밀한 옷의 잔 주름까지도 표현을 하다 언제부터인가 과감하게 주름을 생략해 왔다고 하는데 은진미륵에는 세세한 옷 주름이 생략되었으니 더 후기에 만들어 진 것이 아닌가 추측할 수 있습니다. 

 

 

송불암 미륵불은 고려시대 불상으로 화강석으로 조성된 대형 미륵불로 '제문석불'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답니다.

 

미륵불은 미래에 이 땅에 오셔서 중생을 제도하시는 부처님을 말하는데 미륵불상은 머리에 사각의 보관이 쓰고 있으며 얼굴은 대체로 둥글고 인자한 형상이거나 근엄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송불암 미륵불의 경우 눈이 강조되어 코와 잎이 뚜렷하며 왼손은 가슴에 얹고 오른손은 곧게 뻗어 있는 모습으로 근엄한 표정이라 하겠습니다.

 

미륵불 하단의 받침돌은 연꽃 문양이 조각되 있고, 다른 돌로 조각되어 얹혀진 발 사이에 받침돌이 따로 세워져 있어 그 곳에 소원을 비는 동전들이 꽂혀 있는 특이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송불암의 미륵석불이 있었던 석불사와 관련된 풍수적 전설이 전해지고 있어 소개해 봅니다.

 

고려 때의 일이다.

큰 원력으로 기도를 잘 하신 노스님이 계셨는데 기도를 마친 후 걸망을 지고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황룡산 아래 발을 멈추게 되었다.

노스님의 생각에 이곳이 불법을 전할 자리구나 하고는 주변을 살피는데 여러 가옥이 있고 꽤 많은 사람이 사는 부촌이었다.

 

이곳에 머물기로 결정을 하고 이리 저리 살피는데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외딴 곳에 머물게 되었다.

그리하여 “여보시오. 누구 계시오?” 하며 소리 내어 부르니 30세 가량의 남자가 물었다.

 “스님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오셨습니까?”

“네, 황룡산에 명당자리가 있다기에 부처님을 모시고 불법을 전해 볼까 하고 왔습니다.”

“스님, 이곳에 유생들이 많아서 불교를 믿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하니 스님이 “그러면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 풀막이라도 치고 공부를 하여 대도를 깨우쳐 볼까 합니다.”

“스님 그러면 무엇을 입고 씀씀이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원래 중이란 풀뿌리 나무열매로 생식을 삼을 것이오,

송락과 초목으로서 의복을 대신하고 법당이 없으면 바위굴을 염불당으로 삼고 생활하는데 걸릴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과연 대사님의 말씀입니다.

오늘은 날도 저물었으니 저의 집에서 하룻밤을 쉬었다가 가시지요.”

노승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청년의 후한 대접을 잘 받고 가는데 그냥 갈 수가 없어 말을 꺼냈다.

“절대로 화를 내지 말고 잘 들으시게. 3일 후 아침 자네 모친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날 것이야. 내가 명당 자리를 가르쳐 줄테니 다음 두가지를 꼭 지키게나.  범바위골에 묘를 쓰되 황금돌을 건드리지 말게나.” 청년은 이 말을 듣고 금새 화를 내며 스님을 내쫓았다.

 

그후 청년의 어머니는 과연 노스님의 말씀처럼 돌아가셨다.

그러나 청년은 스님의 당부말씀을 기억할 수가 없었다.

범바위골만 생각이 나서 날을 잡아 묘자리를 정하였다.

땅을 파다보니 황금돌이 나왔는데, 스님의 당부 말을 잊고 그 돌으 들어냈다.

 그러자 그 속에 살고 있던 수 많은 벌들이 떼지어 나왔다.

그중에 한 왕벌이 스님 때문에 살던 곳을 빼앗겼다고 하면서 이 길목을 지나고 계시던 스님의 뒷 목을 쏘아 이곳에서 스님은 열반을 하셨다.

 

그후 이곳 연산마을에는 10년간 홍수, 10년간 가뭄, 10년간 전염병 등 재앙이 끊이지 않았다.

이 마을에 살던 광산 김씨 문중 전체는 문중회의를 열어 그 연유를 찾아 보았더니, 자신들의 실수로 스님을 돌아가시게 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스님의 넋을 위로하고 부처님의 크신 복력으로 마을의 재앙을 막고자 이곳에 부처님을 조성하여 세웠다.

그후 우연히 불상 곁에서 소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와 부처님을 향하여 크면서 마치 부처님을 옹호라도 하듯이 아래로만 자라고 있었다.

 

이러한 형상을 본 후세 사람들이 이 소나무가 그때 그 노스님의 후신이라고 믿고 이 성지에서 기도하여 소원을 성취한 사람들이 무수히 많을 뿐 아니라 이곳에서 출가하여 스님이 되신 분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합니다.

 

그렇게 우연히 나선 발걸음이 충남의 명소, 논산의 명소가 될 멋진 소나무와 미륵불을 만나게 해 주었습니다.

^^

 

송불암

충남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 75번지

041-733-6518

 

 

 

 

 

 

 

[2014년 3월 15일 다녀 온 논산시 연산면의 송불암을 소개하며 계룡도령 춘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