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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풍경이야기

[부산의 새 명소] 추억의 영도다리 도개교 영도대교

 

 

[부산의 새 명소] 추억의 영도다리 도개교 영도대교

 

 

지난 7월 17일 계룡도령이 부산을 다녀왔습니다.

 

연로하신 어머니께서 편찮으시다는 이야기에 급히 가게된 것인데...

하나 뿐인 아들도 없고, 손자손녀들도 다들 지방에 살고 있어

일년에 몇번 보는 것이 고작이다 보니 행복과 기쁨이 사라져

삶의 의욕이 사라지고 만사가 귀찮아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으신 것이 화근으로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시는 것이지

크게 노환이나 병환이 있는 것은 아닌 듯 했습니다.

 

못난 아들이지만 계룡도령이 부모님 집에 도착을 하니

어디서 힘이 난 것인지 이런 저런 음식들을 해 주신다는데...

말리느라 혼이 났습니다.

^^

 

18일의 이른 아침, 잘 움직이지도 못하던 어머니께서

아침 상 차렸다며 밥 먹으라고 하시니...

고민입니다.

 

어떻게 연로한 어머니의 마음에 기쁨과 행복을 되돌려 드릴 수 있을지...

좋은 방법이 있다면 좀 알려 주세요.

ㅠ.ㅠ

 

 

그렇게 하룻밤을 자고난 뒤 문득 생각난 것 하나...

예전 어린 시절 타지에서 손님들이 오시면

모시고 가 구경시켜주던 당시에는 귀했던 영주터널과 함께

부산의 명소였던 도개교 영도다리인데

새로이 복원[?]되어 다시 도개교의 역활을 한다는 것인데

이번 부산 고향집 방문시 다녀 오기로 하였습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위 사진은 1950~60년대의 어느날일 것 같습니다.

 

6.25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헤어진 가족들을 만나기로 하고

기다리던 영도다리 아래의 모습입니다만,

65년 가까이 지난 숱한 세월에도 변치않고

그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는 영도다리 아래의 모습입니다.

 

현재 달라진 점이라고는

아래 사진 좌측의 시멘트로 포장된 부분만 넓이가 늘어난 모습입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그 시절 그 모습...

다음 사진에서 변치 않은 그 모습이 거의 그대로 보여집니다.

^^

 

당시 영도다리 아래에는 점집이 성황이었죠.

지금도 그렇지만...^^

1950~60년대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영도다리 아래의 모습입니다.

 

 

계룡도령이 도착한 시각이 11시 30분경이었는데...

당시 바다의 해무가 육지로 거침없이 휩쓸고 들어 오는 모습이었답니다.

 

 

그리고,

불과 5분여 만에 저 멀리 천마산을 완전히 가려 버렸습니다.

 

 

영도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봉황이 날아드는 산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어,

예로부터 신선이 살고 있는 곳으로 알려져있는

영도대교 뒤의 봉래산(해발 395m)은 해무로 뒤덮였지만

다행히 영도대교는 해무와는 무관합니다.

 

* 영도의 주산인 봉래산은 천마[천마산]가 바다를 건너 달려 가는 집과도 같은 곳인데 일제에 의해 봉래산이라는 이름을 빼앗기고 고갈산이라고 낮춰 불리기도 했다고 하는데 이제는 모든 명칭을 봉래산으로 되돌려야 하겠고, 고갈산이란 이름은 사용하지 말아야하겠습니다.

 

 

영도대교의 도개시간은 낮 12시 정각부터 사이렌 소리와 함께 올려지는데

12시경 부터 차량의 통행이 제한되며 약 30분 후 정상 통행이 이루어집니다.

   

  

이날 타 지역에서 온 관광객과 중국 등지에서 온 해외 관광객들이 한데 모여

탄성을 지르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이채로웠습니다.

마치 50년 전으로 되돌아 간 듯했답니다.

^^

 

 

영도대교가 일제시대 도개교로 만들어진 계기는

분산항에서 내해로 자갈치나 충무동의 어항으로 이동하는

좀 큰 규모의 선박의 통행을 위해서인데...

부산항 내해에서 외해를 돌아 자갈치나 충무동 방면의 내해로 다시 들어서려면

외해의 거센파도 때문에 위험하기도 했지만

영도를 돌아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야하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금이야 선박도 성능이나 안전성에서 당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발전했지만

추억의 그 시절을 되살려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부산시의 생각이 현실화 되어 도개교가 복원[?]된 것인데...

연출 된 것인지

마침 영도대교 아래로 지날 수 없는 배들이 지나가는 모습도 보여 주는 등

제대로 설명이 되는 모습이었습니다.

^^

 

 

영도다리...

계룡도령에게는 어린 시절 참 많은 추억들을 간직한 곳인데...

이제는 영도대교라는 이름으로 복원[?]되어

다시 도개교량으로의 역활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감개가 무량합니다.

근 50년의 세월을 넘나들게 하는군요.

^^

그리고 영도다리하면 빼 놓을 수 없는 노래 한 곡!!!
영도 출신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입니다.

 

 

영도다리 아래의 한 장소는

지금까지 그 모습 그대로를 지니고 있어 묘한 느낌을 줍니다만,

영도다리가 들리는 것도 그 시절로의 회귀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

 

영도대교(影島大橋, Yeongdo bridge)는

1934년 11월 23일에 길이 약 214.63m, 너비 약 18m로 착공 당시 360만원의 공사비가 소요되어 준공되었다.

 

부산광역시 중구와 영도구를 연결하며, 일제시대와 전쟁의 수탈과 애환 그리고 이산과 실향의 역사가 담겨있으며 1966년 도개가 중단되었다.

개통 당시 다리 이름이 부산대교였으나, 1980년 1월 30일 부산대교가 개통되어 영도대교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노후화로 안전에 문제가 되어 기존 대교를 철거하고 2013년 11월 27일 영도대교 확장 및 복원공사 완료 후 영도대교 도개가 부활했다.

 

복원된 영도대교는 매일 낮 12시부터 15분 동안 교량 상판이 들어 올려지는데 이 드는 다리의 길이는 31.3m, 무게는 590톤으로, 2분여 만에 75도 각도로 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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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9일 촬영한 SBS 생방송투데이에 대해 이야기하며 계룡도령 춘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