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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풍경이야기

임난수장군 숭모당을 지키는 세종리은행나무

 

 

임난수장군 숭모당을 지키는 세종리은행나무

 

 

 

세종시는 지금 한창 공사중...

그런데 파헤쳐지고 덮이는 공사장에

심상치않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전월산 1.2km, 양화리은행나무 0.7km

양화리 은행나무???

 

 

2014년 11월의 어느날

전월산과 용샘 등을 탐방하고 하산하면서

다녀온 적이 있는 곳입니다.

 

언제를 기준으로 670년의 수령이라고 표시한 것인지는 알 수 없게 제작되어진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사업지구내 보호수(노거수) 안내'에 따르면

년생이 670년이요 관리인까지 두고 있습니다.

 

 

지난 가을 어느날 황금빛 드레스로 한껏 멋을 부린 은행나무의 모습입니다.

^^

 

 

아래는 현재의 모습이구요...^^

 

 

아래는 역시 2014년 11월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같은 은행나무를 두고 표현이 제각각입니다.

 

도로표지판에는 양화리 은행나무라고 하더니

여기에는 세종리 은행나무라고 소개하며

2012년 12월 31일 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세종리은행나무가 올바른 표현같습니다.

 

 

위 나무와 비슷한 장소에서

비슷한 구도로 잡아 본 사진인데...

노란 은행잎이 가득한 모습과

짙푸른 잎의 은행나무와는 느낌이 확연히 다르죠?

 

 

그래서 은행나무의 본 모습이라 할

노랗게 물들 때를 기다려보는 것입니다.

 

아니 기다려지는 것입니다.

^^

 

 

이 세종리은행나무는

2001년 6월 30일 충청남도기념물 제157호로 지정되었어 있었으나

2012년 세종시에 편입되면서 해제되었다가

같은 해 12월 31일 세종특별자치시 시도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었는데

부안 임씨 전서공파 종중에서 소유와 관리를 맡고 있다고 합니다.

 

양화리 은행나무는

고려 말의 최영 장군과 함께 탐라를 정벌하는 데 큰 공을 세운

공조전서 임난수(1342∼1407) 장군이

이 성계가 고려를 찬탈하여 조선을 건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내려와 고려에 대한 정절을 지키며 여생을 보낸 곳

마당에 심은 은행나무로 알려져 있으며

임난수 장군의 굳은 충절을 기리는 것처럼

6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숭모각앞을 지키며 무성하게 자라고 있으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이곳의 나무를 베려고 했는데,

은행나무가 울어 결국 베지 못하였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답니다.

 

 

은행나무 뒤로 보이는 숭모각(崇慕閣)은

이러한 임난수장군의 업적과 충절을 기려 세운 것으로

세종시로 확정되기 이전에는 마을 한가운데였으나

이제 모두 이주하고, 건물들도 철거하고나니

오히려 더 돋보이는 명소가 되어 있습니다.

^^

 

 

한번 들어가 볼까요?

 

 

숭모각(崇慕閣)은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유적 35호로 지정되었는데

임난수(林蘭秀)는 부안인으로

1342년에 출생하여 고려말 삼사우윤등 11관직을 지냈고

가선대부 공조전서에 올라

최영장군과 탐라를 정벌하는데 큰 공을 세운

부안 임씨의 중시조로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충신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하며

모든 관직을 버리고 이곳으로 내려와 여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현재 그가 매일 마을 뒤 전월산에 올라 고려왕조를 향하여 절을 했던

부왕봉과 상려암 등이 유적으로 전하며

태종 7년(1407년) 6월 21일을 일기로 생을 마쳐

동면 불파미에 묘를 쓰고 이곳에 가묘를 세웠고,

세종은 사당에 임씨가묘라 선액, 불천지위로 모시도록 명하였다고 하며

사당에는 임난수 장군의 초상화가 걸렸었는데

안타깝게도 임진계사때 왜적의 난리를 당하여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당시 초상화의 모습은 임난수 장군이 탐라를 정벌하던 모습으로

싸움 중 왜구에 의해 한손이 잘리게되었는데

그 잘린 손을 화살통에 넣어 메고 있는 모습이라하니

용맹함이 하늘을 찌른 것 같습니다.

 

고종 5년(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독락정 경내의 기호서사를 지키기 위해 신주 일부를 그 곳으로 옮겼으며

1923년 이곳에 유지의 비를 건립하였고,

1957년 서울 시공관에서 전국 임씨 총회를 거쳐 향단에다 건물을 중수하고

숭모각을 복원을 추진하여 1958년 삼문이 건립되고

5년후인 1964년 3월에 본전이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향토유적지에 새들이 떼를 지어 살며 집을 짓고

배설물이 바닥을 뒤덮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듯 해 안타까웠습니다.

ㅠ.ㅠ

 

 

건물이 들어선 자리나 돌로 덮여있는 부분이 아니고는

도저히 사람이 다닐 수 없을지경인데...

혹여 탐방객이 들어왔다가

뱀이라도 만나게 될까 염려되는 부분입니다.

 

 

삼문 너머로 임난수장군의 충절을 기리듯

커다란 은행나무 두그루가 자리하고 있고,

삼문으로가는 주변에는 개망초가 가득 피어있으니

보는 내내 후손들을 탓하기 앞서

요즘의 시대상과 맞물려 복잡한 생각들이 뒤엉키는 느낌입니다.

^^

 

역사와 유적이 가득한 세종특별자치시...

현존하는 유적을 잘 관리하여

후손만대에 널리 귀감이되도록해야 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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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18일 세종시 세종리은행나무와 숭모당을 이야기하며 계룡도령 춘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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