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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느끼는 것들

부산 여중생강간살해 피의자 김길태 수사과정에 대한 의문을 가지거나 글로 쓰면 않되는 것인가?



내가 블로그에 올린 글 때문일까?
아니면 여중생 강간살해범 김길태에 대한 분노 때문일까?
아니면 사회적 분노를 억누르고 살아서 일까?
아니면 의도적으로 희석시키려는 목적을 가진 것일까?

지나치게 극단적인 글들이 올라온다.
흑백의 논리로만 정의하려는 의식들이 모니터 뒤로 숨어 자판을 두들겨 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지난번에 올린 글을 다시 한번 더 올려 본다.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 그리고 선과 악은 과연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 것인지...
돌아 보자.
그리고 인간답게 살자.



어유


2010/03/12 18:37 

이 양반들이 개념자체를 잃으셨구만.....

여중생 질내에서 발견된 DNA랑 길태꺼랑 일치한다고 하지 않았소..
그리고 옹호하는 글이라고는 안하셨다만...분노한 제 눈에는 옹호글로밖에 보이지않고..
제대로 검거하느라 수고한 경찰및 검찰을 칭찬을 못해줄망정 음모론 어쩌고로 몰고 가는거보니까..

역시나 개 진보주의자들이시군...
내가 조중동 찌라시도 아니고 댁들 의견이 먼지 모르는 바는 아니다만..
이건 너무한거 아닙니까? 댁들은 딸도 없수?
김길태의 마녀사냥이 좀 심하긴하고 이넘보다 죄의 크기가 더 큰넘들중에 안잡힌넘들이 아직 있겠다만..

이 넘의 범행은 딸 가진 부모로서 끓는 기름물에 쳐넣고 튀겨 죽이고 싶습니다.거세 시킨담에 말이죠..

아 어느 블로그 가니까(옴마뉴스) 김길태 범행을 또 이명박이랑 연관지어서 난리굿을 쳤더만..
댁들도 그런 사람들인가보오...........정신좀 차리시죠? 나잇살좀 저보다 더 드신분들 같은데 왜 이러오.

 

어유
2010/03/12 18:46

아 한마디 더 하자만.

이런 발바리 같은 넘한테 인권따위 개나 주라고 하시오..
무기징역도 가볍습니다.

어디가서 정부전복 운동 하실것 같은 분들이
김길태가 죄값 치르고 뉘우치길 바란다라는 글따위 적으시면 안대지요..
이넘이 반성도 하기전에 세상에서 없애버려야죠...X자식인데...

인권 찾는답시고 법의 수위를 자꾸 낮추는 사람들땜에 아직까지도 이런넘들이 존재하는 겁니다.

비록 의도적인 마녀사냥 냄새가 강렬히 난다만은 이번만큼은 그 사냥에 동참하고 싶을 뿐이군요.

 

쿠키
2010/03/12 20:07

어유 님의견에동의합니다 ! 김길태는4번의성폭행이나,미수만의로도 몇명의여자인생망친 놈입니다 안잡혔음 누구의딸들인생 몇이나더 망쳤을놈이죠!!저도경찰을 다 옹호하는건아니지만 이런식에루머는거의소설수준이고,정말아니라고보네여 아동성폭행범들에게관용이나 인권은없다고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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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짝사랑을 하는 블로그 한 곳...

당췌 서로이웃도 받지 않고,
덧글도 막아 놓은채

안부게시판도 닫아 두고 지내는 이가 있다.

 

직업[?]이 식물 관련 쪽의 점문적인 일을 하시는 분 같은데...

가끔씩 식물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그니의 블로그에 가서 검색도 해보고,

꼭꼭 막아 두었지만 곳간을 열어 몇자씩 긁어 오기도 하는 블로그다.

 

우연히 우리숲 나뭇잎 블로그 1기로 영광스럽게도 함께 동참하게 되어

요즘은 새로운 글들을 자주 보곤 한다.

 

오늘 우연히 이것 저것 작업할 것이 많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

내가 늘 생각하던 것과 같은 느낌의 글이 올라 있는 것을 보고

주인장의 허락도 없이 퍼다 놓았다,

 

나는 다분히 감성적이라 차분하게 글을 쓰기에는 좀 무리가 따르는 성격이다.

다시 말해 논리적으로 정리된 글이라기 보다는 느낌이 우선하는 격정적인 글이 보통이다.

 

그래서 평소 가지던 느낌들을 글로 정리하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내 마음을,

내 생각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었다.

아래 그대로 옮겨 놓았는데...

 

여러분 들은 어떻게들 생각을 하시는지?

 

지금 진눈깨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밤...

 

마치 아래의 사진속 커브처럼 그 뒤를 알 수없는 것이 인생이지만...

그래도 바른 정신

바른 분별은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모광고 카피를 보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믿고 싶습니다, 악을 이기는 선을...'

 

나는 그 광고의 카피라이터 또는 광고주 측에서

'선'이라는 것에 대해 뭔가 잘못된 가치관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들은 기독교적인 신념에 의한 선을

그 가치관의 기반에 두고 있지 않나 싶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는 선이란

결코 그런 게 아니다.

 

선이라는 것은

한없는 사랑과 자비, 희생과 나눔 같은 것을 담고 있어야 한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게 바람이 아니라 햇볕이라는 이솝우화처럼,

또는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 같은 것처럼

선은 거의 무조건적 개념의 가치관이지

적대시하는 무언가에 대해 승리하려는 개념의 가치관이 절대 아니다.

 

기독교적인 신념에 의한 선에 기반을 둔 미국 같은 나라는

선에 대해 가장 그릇된 가치관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9.11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이라크를 침공하여

더 큰 인명피해를 낳고 악행을 자행하는 주체가 된 것만 보아도 그렇다.

 

보복과 응징이라는 행위가 곧 악의 무리로부터 선을 지키고

평화와 정의를 지키는 일이라고 강조하지만

결국은 어떻게 되었는가?

 

피가 피를 부르는 악순환으로 이어지지 않았는가?

 

소수의 악을 제거하기 위해

큰 악의 집행을 미화시키는 일에 미국은 너무나도 당당했다.

 

제아무리 선이었던 것도

악을 이기기 위해 더 큰 악이 된다면

결코 선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아니, 선이 너무 거대해지만

그것이 곧 악이 된다.

 

영화 '달마야 놀자'에서도

절에 들어와 끊임없이 말썽을 피워대는 조폭들을 몰아내기 위해

청명스님(정진영 분) 자신이

"내가 한번 짐승이 되어 보겠습니다!"라는 말을 한다.

 

곧 자기 자신이 더한 악이 되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결국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려면

더 큰 마음의 물에 던져넣어야 한다는 큰스님의 가르침으로 인해

조폭들이 교화되게 된다.

 

 

나는 민주주의라는 것도

악으로의 오용을 정당화시키는 이념 중 하나라고 본다.

 

이른바, 다수결원칙이라는 것이 그렇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소수의 행복이나 권리쯤은 짓밟아도 된다는 논리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어떤 이해득실에 있어 대립되는 관계가 성립되었을 때

내가 만약 다수의 무리에 속해 있다면

피해보다는 권리와 이득을 누릴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소수에 속해 있다면

압박과 피해와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고 희생을 강요당할 것이다.

 

내가 태어난 바닷가에서 평생 물고기 잡으며 살고 싶어도

간척사업을 해야 하니 모두 나가라고 하면서 몇 푼 되는 보상금 공탁 걸어두면

평생 직장이었던 터전을 떠나가야 한다.

 

내가 살던 곳에서 오래도록 살고 싶어도

그곳에 아파트를 짓겠으니 나가라고 하면

아무리 정들고 추억이 있는 곳이라 해도 나가야 한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들은 소수의 희생과 아픔을 결코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기며

비협조적으로 버티는 개인을 향해 돌팔매질을 한다.

 

자신이 소수의 피해자가 되어보기 전까지는

그런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제아무리 선일지라 해도

다수가 되면 곧 악이 된다.

 

 

나는 이런 것도 보았다.

 

눈엣가시인 한 사람을 악으로 간주한 몇몇 무리의 사람들이

악과 대결하는 자신들을 선으로 인식하고는

그 악을 제거하기 위해 공모하여 자신들이 더한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이 때에도 다수의 선은 이미 악으로 변질되어

자신들이 악인지도 모른 채,

자신들이 하는 일이 악행인지도 모른 채

결코 올바르지 못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일삼는다.

 

이는 진정한 선의 가치를 모르거나

잘못 판단한 데서 비롯된 오류다.

 

선의 탈을 쓴 악은

자신들의 뜻에 반하는 무리들 또한 악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그들까지 떨쳐내 버리려는 악행도 서슴없이 저지른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악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들은 악의 반대편에 서 있는 정의로운 사람들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선도 다수가 되면 세력화되기 마련이고

그러면 권력과 지위를 갖게 되므로

그것을 이용해 소수를 짓밟으려는 아무렇지도 않게 시도한다.

 

이미 악으로 변질되어버린 선은

소수를 이해하려 들지 않거나 희생을 강요하며

자신들이 그 어떤 짓을 저지른대도 기필코 정당화시킨다.

 

선은 결코 악과의 대결 구도에서

반대편에 놓인 가치관이 아니다.

 

그것을 선이라고 불러서도 안 된다.

 

자신의 악행이 악행인지도 모르면서 저지르는 일로 인해

고통받는 이가 있다면

그 고통받는 이에 대해서는 자신이 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내면에 내재된

또다른 선의 모습과도 마주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위선이다.

 

진정한 의미의 기부가 아니라 다른 목적을 위한 기부라든가,

사회적인 지위를 이용해 사적인 이득을 취한다든가,

기업가들이 국가의 발전을 도모하는 척하면서 비자금을 조성해서 올바르지 못한 데 사용한다든가,

겉으로는 웃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복수의 칼날을 가는 등의 행위들이 모두 해당된다.

 

이런 사실은

누군가 까발라지 전까지는 다른 사람들이 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평상시에 그 위선자들은 대개 존경 받는 사람 또는 좋은 사람으로 비친다.

 

사회적인 명성을 갖거나

일정한 지위에 오른 사람일수록 위선자일 가능성이 높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 누구도 위선자가 되라고는 하지 않지만

이 사회가 위선자를 잘 살게 하는 구조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렇게 변모시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위선자 양산의 책임을 사회로 떠넘기고 싶지는 않다.

 

씨가 그래서

태어날 때부터 위선자인 사람들도 있고

이 사회를 살아가려면 누구나 약간의 위선은 갖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름 끼칠 정도의 위선...

 

언젠가 그 속살을 발라내 질겅질겅 씹어주고 싶으나

그렇게 하면 그 사람에 대해 내가 악이 될까 봐

참고 또 참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