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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풍경이야기

전북 부안군 구암리 지석묘군[고인돌]을 다녀와서...

지난 2월 14일 블로그 이웃들과 다녀 온 전북 부안에 대한 글을 올리다 미처 다 올리지 못한 지석묘군이 있어 이제사 올려 본다.


계룡산 갑사입구에서 출발한 시각이 9시 20분경...
부안군청 문화관광과 관광지도계에 전화를 했다.
혹시 다른 자생지가 있나 물어 보려는 생각에서...

홈페이지에 년중무휴 안내라며 기재된 전화번호로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않는다.
쩝~~~
부득이 지난 기억을 더듬을 수 밖에...

10시 40분쯤 가는 길에 지난 달 17일 미쳐 들리지 못한 부안군 구암리 지석묘군을 먼저 들렀다.

마을 한가운데 위치한 990여평의 지석묘군은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 103호로 지정된 곳인데
부안군애 100여기가 있는데 그 중 13기의 지석묘가 올망 졸망 모여 있었다.

전체적으로 잘 가꾸어진 모습이 보기에 좋았으나 막상 카메라를 들이대려니
낮은 담장 너머로 보이는주변의 울긋 불긋한 지붕들이 좋은 그림을 주지는 않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곳 구암리 지석묘군 문화해설안내소에는 토요일이랍시고 문화관광을 주도하는 관련부서는 전화도 받지 않는 것과는 달리

두분의 노인이 관광안내소를 지키고 계셨는데...

물론 이유야 있겠지만

한분은 이것 저것 연락처를 적으라느니 하며 방문 기록을 요구 하는데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ㅡ.ㅡ

다른 한 분은 전체적인 지석묘군을 사진으로 잘 담으려면 사다리가 필요하다면서

방문기록을 요구하는 할아버지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친히 사다리를 가져다 주셨다.

덕분에 위의 파노라마를 담을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구암리 지석묘군

 

지 정 : 사적 제103호
지정일 : 1963. 1. 21
소재지 : 부안군 하서면 석상리 707-1
소유자 : 국 유
시 대 : 청동기시대
형 태 : 남방식
규 모 : 10기 

구암리 지석묘의 지석 특수형의 하나로 구분할 수 있다.
부안군에는 여러 곳에 지석묘군이 있는데 이 구암리 지석묘군이 가장 대표적이다.
구암마을 중앙에 모두 13기의 남방식 지석묘가 위치해 있었다.
이들은 모두 자연암석을 떼어내어 상석(上石)으로 하고 몇 개의 지석으로 고였다.
그 중에는 비교적 키가 높은 주형지석도 혼용되고 있다.
남방식 지석묘는 4개의 지석으로 받치는 것이 통례이지만, 여기에서는 4개의 지석을 고인 지석묘 외에도 7개나 8개까지 고인 예의 지석묘도 혼재하고 있다.
상석은 대체로 0.6m 내외의 두께를 보이고 있어 비교적 얇은 형태를 보이고 있지만, 1.3m의 두께를 보이는 두꺼운 것도 있다.
상석의 길이는 6.4m로 초대형의 것보다 1.8m의 작은 것도 공존하고 있다.
이중 규모가 크고 대표적인 하나는 길이 6.4m, 너비 5.12m, 두께 0.69m의 상석을 8개의 높은 지석이 떠받치고 있는데, 하부 지석들의 크기는 높이 50~60㎝, 폭 72~100㎝, 두께 53~78㎝이다.
크기로 보아서 최대급에 속하는 남방식 지석묘의 하나로 손꼽을 수 있다.
이 곳 고인돌들은 이른바 남방식으로서 자연암석으로 덮개돌을 하고, 몇 개의 굄돌로 괴었다.

이 곳의 굄돌 중에는 비교적 키가 높은 것도 혼용되고 있으며, 4개의 굄돌로 받치는 것이 동례지만 여기에는 8개의 굄돌을 괸 점이 특이하다.
남방식 고인돌 중 덮개돌 너비(남북의 길이 6.35m, 동서의 길이 4.50m, 두께 0.69m)가 넓은 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석묘란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무덤으로서 고인돌이라고도 하며,

책상처럼 세운 탁자식(북방식)과 큰 돌을 조그만 받침돌로 고인 바둑판식(남방식)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지역은 청동기시대의 무덤인 지석묘가 있는 데, 고인돌(Goindol)이라고도 부르는 지석묘는 남방식과 북방식으로 나뉜다.

이곳에는 받침돌이 있는 남방식 지석묘 13기가 있었다.
받침돌은 4개를 고이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곳에 있는 지석묘 중에는 7개 혹은 8개를 받친 것도 있다.
상석의 두께나 길이 그리고 모양이 다양하며, 거북모양을 한 것도 있다.
가장 큰 것이 길이 6.4m, 너비 5.12m, 두께 0.69m인데, 이는 남방식 지석묘에 사용된 상석 가운데에서도 매우 큰 것에 해당한다.
지석묘 밑에서는 돌칼과 돌화살촉 등이 발견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남방식 지석묘(南方式 支石墓)의 분포는 대체로 경기도 이남지역에 한정되고 그 북쪽은 북방식 지석묘(北方式 支石墓)가 분포하고 있다고 한다.
 

전북지방은 지역상으로 보아 남방식지석묘의 분포권내에 속하고 있으나, 분포상에 있어서 약간 특색 있는 양상을 나타내 주고 있다고 하며, 그것은 탁자식(卓子式) 형태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북방식 지석묘가 남쪽 한계선을 멀리 넘어서 무주나 고창 등지에 도서(島嶼)와 같이 점분포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고,  이러한 양상은 전남 영산강 유역까지 보이고 있다는 점이라고 한다.


또한 이 지역에서는 기반식(碁盤式) 형태를 기본으로 하는 남방식이면서도 하부 지석(支石)의 구조에서 특이하게 발달된 특수형의 분포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특수형들은 대체로 키가 높은 지석을 사용하는 것을 공통적인 특징으로 삼고 있으며, 그 중에서 주형지석(柱形支石)만을 사용하거나 혼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전라북도에서는 1m가 넘는 주형지석을 사용한 지석묘의 보고도 있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거북 모양으로 생긴 거대한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처음 조사가 실시된 1956년에는 13기가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10기의 지석묘만 남아 있다.

대체로 자연암석을 떼어내 자라의 등 껍질과 같은 모양의 덮개돌을 사용한 바둑판식 지석묘로,

뚜껑돌이 큰 것은 길이가 6.35m, 너비 4.5m, 높이 70∼100㎝에 받침돌도 4개에서 8개를 돌려 세웠다.
4개의 지대석을 괴임돌로 사용한 것부터 모두 8개의 받침석을 사용하여 덮개석을 받치고 있는 것까지 다양한 형태들이 모여 있다.
또한 10기의 지석묘 중 덮개석의 크기가 가장 클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발견된 지석묘들 중에서도 가장 크다고 한다.


전북 지방은 지역상으로 보아 경기 이남 지역에서 나타나는 남방식(南方式) 지석묘(支石墓)의 분포권 안에 속하고 있으나,

이 구암리 지석묘군은 특색 있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다른 곳에서는 발견된 예가 없는 형태도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 할 것이다.

 

 

한눈에 다 보이는 곳이라 달리 더 찾아 볼 곳은 없었지만

마을 가운데 개인 소유의 집 마당에 있던 것들을 정리하여 만들었다는 것에는 큰 수고로움이 느껴진다.

 

몇해 전만해도 철제 보호대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철수를 하여 보기에 여유롭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자료 조사를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니 모 유치원의 경우 아이들을 지석묘위에 않혀 찍은 사진을

버젓이 올려둔 것을 보고는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다.

 

명색이 지정 문화제인데...

자라는 아이들에게 소중함을 알려줘야 할 교육기관에서 오히려 놀이터 정도로 생각하는 듯하여 안타까웠다.

 

 

 

 

[2009년 2월 14일 전북 부안군 하서면 석상리 구암리 지석묘군을 다녀와서  계룡도령 춘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