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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풍경이야기

공주시를 가르며 흐르는 금강을 4대강의 망령이 죽이고 있다?















  

7월 14일 공주는 2010 대백제전 준비로 한창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모습도 눈에 보입니다.

 

바로 금강을 파헤치는 모습입니다.

 

몇년 전 백제큰다리 아랫부분에서 준설을 하면서 조금씩 모래를 채취하던 모습은 보아왔습니다만

이렇게 대규모로 강을 막아서 어디론가 쉼없이 금강의 모래를 실어 나르는 모습은 처음입니다.

 

 

위사진 상류부분[윗부분]의 연못같은 부분은 모래 채취가 끝난 곳인 듯 보입니다.

지금 파헤치는 이곳은 공사가 벌어지기 전에는 억새가 무성하게 피어 은백색의 아름다움이 일렁이던 곳이었습니다.

 

지금 공사를 하는 곳은 아래 다음지도의 그림에서 붉은 점선으로 표시한 부분입니다.

 

 

매년 장마철이되어 많은 비가 내리면 금강둔치까지 물에 잠기기도 하니 준설이라고 생각을 해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 4대강 삽질 때문에 강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강을 죽이는 모습으로만 보입니다.

 

이 정권 들어서 국민간 갈등과 불신만 조장하여 오더니 드디어 의심병이 필자에게도 생겼나 봅니다.

ㅠ.ㅠ

 

온갖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고,

가진자 만을 위한 정책과

듣보잡 삽질만 일삼고,

 법과 질서를 스스로 뭉개고 무시하는 정권하에서

어쩌면 당연한 질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필자가 이곳을 지나간 시간이 오후 6시 20분경인데...

그 시간 전에는 움직임이 없어 보이던 건설장비들이 갑자기 움직이는 듯이 느껴졌습니다.

 

마치 4대강 삽질 악령이 어둠을 빌미로 살아 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 많던 자갈들도 깡그리 사라지고,

삼각주[?]의 식물들까지...

 

그리고 물속의 그 많던 생물들은???

그래요 다들 다른 곳으로 대피를 했다고 칩시다.

그리고 또다시 삼각주는 생길 것이리 치고,

풀이나 식물들도 다시 자랄 것으로 봅시다.

 

하지만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두껑 보고 놀란다고

공주 시민인 필자가 내일은 공주시로 전화를 해서 확인을 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큰비가 예상되는 장마철에도 백제대교의 아래를 거의 다 막아버리고

공사를 골재채취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4대강 삽질의 한 부분인지,

그리고 그 많은 모래와 골재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인지를

 

이 정권하에서 숨을 쉬고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도 무서운 삶입니다.

보여지는 그 어디에서도 진실은 없고

기만과 눈속임,

그리고 거짓말로, 입에 발린 소리로

그 순간만 모면하려는...

국민을 멍충이로 아는 이런 듣보잡 정권 말입니다.

 

사는게 정말 피곤합니다.

 

정치는 국민들이 정치를 하는지 않는지도 몰라야 가장 좋다고 한 말이 있습니다.

국민이 오히려 이 정부를 걱정하고 살아야하니...

ㅠ.ㅠ

 

 

 

 

 

 

 

[2010년 7월 14일 공주 금강둔치를 지나며 본 풍경에 끝없는 걱정을 하며  계룡도령 춘월]

 

 

 

4대강 사업의 역설: 강을 살린다면서 죽이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속으로만 애를 태워 지나칠 수 없는 일이 하나 있다.

모든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또는 반대하고 있는 4대강 살리기라고 하는 망령에 대해서다.

 

 죽지 않은 강을, 살아있는 강을, 죽었다고 잘못 판단하고, 살린다면서 죽이고 있는 이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 무엇이 문제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여당은 4대강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논리는 강을 살리는 일과는 무관한 정치적 논리’ 라고 매도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강을 살리려고 애를 쓰는데 4대강 공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치적 논쟁을 앞세우는 터무니없는 집단으로 매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첫 번째 모순이 있다. 정부가 하면 생태적이고, 스님들이나 사제들이 목숨을 걸고 강가에서 생명을 외치면 소수의 정치적인 의견이라고 간주하는 이 모든 행위가 정말로 정치적인 것이다. 운하를 한다고 했다가, 국민 여론에 부딪혀 하천을 정비한다고 했다가, 흐르는 물을 가로막는 보를 세워야만 수량을 확보하고 수질을 개선하며 홍수를 예방한다고 하는 ‘4대강 사업’ 으로 둔갑시킨 전 과정이 전부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행위인 것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진실을 알고 싶어하고 진실을 위해 싸우려는 국민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얼마 전 MBC 100분 토론에 나온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발언은 사뭇 위협적이었다. 그는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집단을 정치적 논리를 앞세워 4대강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고 꾸짓 듯 발언했다. 참으로 적반하장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지금 정부는 4대강 사업을 동시에 실현하는 것이 정부 예산을 단기간 내에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는 얄팍한 논리로 서둘러 강을 죽이고 있는 셈이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낼 때마다 오히려 정부와 여당의 관계자들은 마치 문제는 하나도 없는데 홍보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탓하면서 온갖 홍보 자료와 영상물을 급조하여 사람들을 호도하고 있다. 아마도 앞으로 1,2년 안에 이런 모든 사건들이 터무니없는 거짓으로 드러날 것이다. 특히 보를 설치하면 수질이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이며, 준설하면서 파헤치는 행위가 얼마나 수많은 미물들에게 치명적이고 생태를 교란시키는 행위인지 말하지 않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물이 조금 오염되면 뭐 문제될 것 없다고 하고, 문제가 있으면 다 로봇 물고기가 발견해낼 것이라고 만화 같은 이야기를 한다. 여러 법적 절차도 단축해가면서, 억지로 여론의 향방을 거스르면서 왜 이토록 4대강 사업에 집착하는 것일까?

 

    정부와 여권 지도층은 4대강 사업은 1석3조 (一石三鳥)의 사업이라고 부르짖는다. 수질도 개선하고 홍수도 예방하며 수량을 확보하는 것이 하나요, 둘째는 유역환경을 생태적으로 재정비하여 지역을 살려내고, 셋째로 4대강 살리기 건설 공사를 통하여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선전에 불과하다.

 

첫 번째 사안은 사실상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문제가 산적해있으며, 두 번째 사안은 자전거 길을 만들면서 주변지역이 발전한다고 말도 안되는 위장을 한다. 끝으로 일자리는 건설 장비들이 대신 하고 있기 때문에 기대하는 것만큼 그렇게 많이 창출되는 것도 아니다. 1석3조 (一石三鳥)가 아니라 1석3해 (一石三害) 의 일이다.

 

멀쩡히 흐르는 강에 보를 설치하여 흐르는 물을 가로막는 행위는 그 자체로 흘러야 하는 물의 속성, 물의 의지를 배반하는 것이다. 그리고 4대강 사업으로 지역을 살린다는 것도 헛구호에 불과하다. 보를 세우고 하천을 정비한다고 지역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바로 살아날 것이라는 허튼 기대로 부푼 지역 사람들에게 땅값만 올리는 폐해를 초래하는 일이다.

 

그리고 셋째로 일자리는 토목사업으로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현장을 보아라. 어떻게 해서든지 임기 중에 공사를 완료하려고 장마철에도 공사를 강행하고, 때로는 군인들도 현장에 동원하는 이런 상황이 어떻게 일자리를 늘리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

 

    거의 모든 국민은 사실상 4대강 사업의 모든 진실을 외면하거나 모르거나 침묵하고 있다. 심지어는 수많은 수리관련 학자들까지도 침묵하고 있다. 발언해야 할 전문가들이 사회적 책무를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왜 수많은 불합리함과 의구심, 무리함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끈질기게 강행하는 것일까?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짐작하는 대로이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들이 마땅히 해야 할 직언들을 배재한 채, 대통령이 잘못된 집착으로 추진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러 전문가들의 자문이 있었겠지만,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견해는 전혀 반영된 것 같지 않다. 그냥 밀어붙이는 사업인 것이다.

 

    오늘도 대통령은 아침에 일어나면서 4대강 사업을 지금과 같이 차질 없이 추진한다면 미래에 모든 국민들이 정말로 잘한 일이라고 할텐데 왜 사람들이 반대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강은 대통령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자연은 인간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한국의 4대강은 물고기를 비롯한 온갖 생명체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강은 한반도의 핏줄이다. 강은 한반도를 살리는 핏줄이고 젖줄이다. 모든 한반도의 고대사는 강변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즉 강은 단순히 물이 흐르는 곳이 아니라, 그 주변에 수많은 문화유산을 거느리고 있다. 강은 또한 땅의 하늘이다. 강을 보는 순간, 강에 비친 하늘이 보인다. 넓게, 유유히, 속살거리며, 때로는 유장하게 흐르는 강가에 생기는 흰 모래톱은 땅과 강 사이에 완충지대를 만든다. 강 주변의 수목이나 풀들은 때로는 습지를 이루며 물을 정화한다. 멀리 보이는 산들과 강바람 사이에서 노을이 질 때의 풍경은 한국인들 모두의 고향인 셈이다. 그것은 우리가 모두 잊지 못하는 이 땅의 정체성이다. 그런 풍경 위에 강을 가로지르는 ‘보’라고 불리우는 과장되고 기괴한 토목 구조물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의 집단기억을 모독하고 파괴한다. 자연스러운 풍경을 바라본다고 하는 것은 자연이 또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흐르는 강물을 가로막을 댐과 같은 구조물인 보는 자연과 강과 사람들의 정서와 물고기들과 미물들에게 덫 씌울 사라지지 않을 상처다. 4대강 이야기를 할 때마다 사람들은 정치적 논리나 경제적 논리를 앞세운다. 그러나 모두 잘못이다. 강은 경제도 아니고 정치도 아니고 그냥 흘러야 하는 물의 업이다. 생명이다.

 

    강물은 숫자가 아니다. 때로는 홍수도 나야 한다. 주민들이나 농지의 피해가 최소화하는 한도 내에서 때로는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가는 홍수도 필요하다. 태풍도 불어야 한다. 그래야 연안 해안들의 적재된 오염물질들을 갈아엎을 수 있다. 제주도 해안이 오염되었다고 하지만 그나마 참을 수 있는 것은, 태풍이 불어 닥쳐 ‘바다밭’을 갈아엎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4대강을 둘러싼 진실에 관하여 논의해야 한다. 세계의 모든 추세가 강물을 살리기 위하여 보를 제거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지금, 수많은 보를 4대강에 설치하려는 이 나라의 전문가들은 어느 행성에 사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4대강이 서울을 지나는 한강을 모델로 삼는지 이해할 수도 없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과학적 진실을 듣고 싶다.

 

    지금 정부가 원하는 대로,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4대강 공사가 마무리되었을 때, 잘못이 발견된다면 그 때는 어찌할 것인가. 그 때도 ‘우리는 잘못이 없다. 우리는 잘 모른다. 다 전문가들이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다’ 라고 대통령과 정부가 발뺌을 할 생각이라면 더욱이나 4대강 사업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마지막 순간임을 명심하고 이제 장마철 공사를 중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스님들, 사제들, 전문가들, 정부 관계자들, 시민들 모두가 함께 정말로 진지하게 다시 한번 생각하고, 공사의 속도를 줄이고, 작은 부분이라도 시험적으로 운영해보고. 추진해야 4대강을 진실로 살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한국의 강은, 아니 4대강은 죽지 않았다. 강은 죽은 적이 없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오염물질을 흘려내기 때문에 강이 아픈 것이다. 그러나 그 아픔도 강과 강바닥의 토양과 자갈들, 주변의 모래톱과 습지들의 자정능력으로 어떻게 해서든 몸부림을 다해 스스로 치유하고 있다. 그렇게 수천 년간 강은 스스로 치유하며 흐르고 죽은 적이 없다. 다만 정말로 강을 제대로 생명으로 대접한다면, 그런 강의 노력에 조금만 힘을 보태주면 되는 것이다.

 

    낙동강 하구 주변에는 본래 90여 개의 습지가 있었다고 한다. 그 광활한 영역이 바로 바다로 들어가기 전, 물을 정화하던 자연의 장치였다. 그런데 그 습지가 지금은 30여 개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전부다 인간의 욕망에 의해 매립하여 개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을 맑게 하고, 수량을 저장하는 방법은 보 말고도 얼마든지 있다.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들을 찾을 생각은 하지 않고, 가장 자연에 거스르는 일을 막무가내로 진행시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보를 건설하는 현장에 다녀온 사람들은 모두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태연하게 일어나고 있는가 라는 허망함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강을 파헤친 풍경에서 오는 폭력적인 광경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들 내면에 흐르던 강이, 그 기억이 사라져버린 것에 대한 분노이기 때문이다. 강의 제일 중요한 가치는 풍경이다. 한국의 강은 강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의 강은 산과 함께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땅을 ‘강산’이라고 부른다. 산이 강이고, 강이 산이다. 이런 독특한 지형의 나라에서 강을 잘못 손대는 것은 산을 잘못 손대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많은 문인들도 함께 나서서 보를 건설하는 현장을 방문하기를 바란다. 나의 필력으로는 그 참혹한 광경을 언어로 표현하는 데에 한계를 느끼기 때문이다. 소설가와 시인들이 이 사건을 제대로 국민에게 감성적으로 전달할 때, 비로소 감춰진 실체가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왜냐하면 강은 또한 소설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긴 소설을 대하소설이라고 하지 않는가. 더 늦기 전에 우리 모두 보를 건설하는 현장에 가보자. 그리고 바라보자. 광기의 현장을. 그래도 광기에 맞서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