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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풍경이야기

전북 완주군 천년 사찰 송광사로의 역사를 향한 발걸음... [3]


어느 사찰이나 가면 대웅전의 뒷편이나 더 높은 곳에 삼성각을 둔다.

불교가 들어와 토착화되면서 우리의 전통종교를 존중하려는 뜻도 있지만 종교가 지향하는 지점이 같기에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의식에서 비롯 된 것이리라 생각한다.

 

삼성각은 불교 사찰에서 산신(山神)·칠성(七星)·독성(獨聖)을 함께 모시는 곳이다.

삼성을 따로 모실 경우에는 산신각·독성각·칠성각 등의 전각 명칭을 붙인다.

삼성을 함께 모실 때는 정면 3칸, 측면 1칸 건물을 짓고 따로 모실 때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건물을 짓는다.

산신(山神)은 한국의 토속신 산신령에 해당하는 호법선신으로 산신이라는 인격신과 화신인 호랑이로 나타난다.

독성은 천태산(天泰山)에서 홀로 선정을 닦아 독성(獨聖)·독수성(獨修聖)이라 불린 나반존자(那畔尊子)를 일컫는다.

칠성은 수명장수신(壽命長壽神)으로 일컬어지는 북두칠성을 뜻하며, 본래 중국의 도교사상과 불교가 융합되어 생긴 신앙이다.

송광사는 이 삼성을 다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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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각 내부에는 삼성의 모습들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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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각 옆에는 오백나한전이 있다.

 

나한전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72호로 지정되어있는 곳으로 나한은 아라한의 약칭이다.

아라한은 응공, 응진의 자격을 갖춘 분들을 말하며 불교에서 성자를 부르는 호칭이기도 하다. 
석가모니 부처님과 두 분의 보살, 16 나한과 500 나한을 모신 법당으로 정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이끌기 위한 법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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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나한은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소승의 최고 교법인 아라한과를 얻은 5백성중을 뜻하는 것으로 공양받을 자격이 있는 분들을 응공이라 하고 진리에 당하여 사람들을 충분히 이끌 수 있는 능력의 소지자를 일컬어 응진을 갖추었다고 말한다.

 

비단 불교에서만 쓰는 존칭이 아니라 인도 여러 종파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나한, 응진전엔 석가모니불이 주존으로 모셔져 있다.

좌우에 큰제자인 가섭과아란을 모시기도 한다.

그 좌우로 열여섯 분의 나한들이 차례로 앉아 아주 자유스러운 몸짓을 하고 있는데 웃기도 하고 졸기도 하고 등을 긁기도 한다.

생활하는 모습의 자유자재한 형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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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여래 열반 뒤에 상수제자 마하가섭이 회의를 소집하였다. 생전에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바의 내용을 모아 모두정리하기 위함이었다 한

다.

오백 비구들이 모였는데 오백 분은 하나같이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한 분들이다.

이 모음을 제1결집또는 오백결집이라 부른다.
오백 나한전의 오백 나한들은 이 모임에 모였던 오백 명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나한전의 불단은 대웅전과 같은 불전과 달리, 좁은 폭의 불단을 ㄷ자형으로 배치하여 석가모니 부처님과 나한을 차례로 배치하였다.

대웅전 등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불단 대신에 헝겊으로 막은 소박한 불단 모양을 하고 있으며 일반 법당의 불상 위를 장엄하는 화려한 닫집은 보이지 않는다.

닫집이 없이 소박하게 한 것은 해탈의 경지에 이른 석가모니 부처님에 비하여 깨달음의 정도가 낮은 아라한을 주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건물평면의 간략함 외에도 나한전은 사찰의 중심에 배치되는 주불전에서 떨어진 위치에 자리하며, 건물의 외양도 주불전에 비해 격이 낮은 맞배형태의 건물인 경우가 많다.

 

송광사의 대웅전 후면에는 오백나한전이 자리하고 있는데 송광사 나한전은 십육나한을 모신 전각과는 달리 벽면에 여러 단을 설치하여 각양각생의 표정을 하고 있는 나한을 ㄷ자형의 불단과 함께 배열하는 특이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오백나한전 우측으로 적묵당이 있는데 선방으로 행처하는 스님들의 거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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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에 아래의 유적들이 있으니 미처 공부하고 가지 못해 다 담지를 못했다.

 

송광사 사적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5호)
송광사의 중창을 알리는 사적비는 인조14년에 사찰의 중창을 알수 있게 하는 명문과 시주를 했던 당시의 인물들, 그리고 전설로만 알려져 있던 진묵스님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첨성각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천체를 연구하던 건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스님들의 요사채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이다. 
 
목패(전라북도 유형문화재170호)
왕실의 안녕을 발원하는 국내 최대의 목패 3위가 남아 있다. 크기와 조각의 섬세함으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문화재로 지정된 목패다. 
 
주악비천도
대웅전 천정에, 하늘을 날며 부처님께 소리 공양을 올리는 주악비천도 11폭이 조성되어 있으며 각종 악기와 춤사위는 조선시대 음악과 옷차림들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하지만 사진 촬영을 제지당해 담을 수 없었음이 안타깝다.

분별을 버리자는 불교에서 분별에 사로잡힌 일부 불교도들의 의식이 아쉬움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좀 더 공손하지 못한 나의 불찰 또한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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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가 그리 왕성한 사찰이 아니라서 그런지 자료를 준비하는데 있어 홈페이지의 글에도 오타가 많았고 전경 소개 그림도 안내판의 그림과 홈페이지의 그림 그리고 실제와는 많은차이가 있어 아쉬움이 더욱 컷다.

 

송광사를 돌아 나오면서 금강문앞에서 사진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를 설명한 후 각자의 느낌을 담으려 준비하는 우리일행이 담긴 사진이 있어 올려 본다.

참 좋은 블로그 이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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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 나오는 길에 송광사 입구의 전통찻집 백련다원의 처마의 모습을 담아 보았다.

맨살을 드러낸 처마에 매달린 풍경이 한가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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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입구 일주문과 담으로 연결된 백련다원...

송광사가 원래 백련사여서인가?

생긴지 얼마되지 않았을 찻집의 이름이 백련찻집?

백련차를 판매해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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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를 벗어나면 바로 오른쪽에 낡은 돌담이 보이는데 회벽과 회벽이 벗이진 모습이...

그리고 무너진 돌 담장에서 거둔 것으로 보이는 돌이 줄지어 있는 모습이 정감어려 한장 담아 보았는데 언제 다시 담장이 복구 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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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라 그런지 방문객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백련 찻집앞에 무언가를 기다리듯 어금니를 앙다문 표정의 방문객의 모습이 재미있어 몰래 담아 보았는데...

ㅎ~~ 설마 초상권 침해로 소송을 하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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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의 송광사는 의외로 찾아가는 길이 힘들다.

물론 가는 방향은 여러 방향이 있지만 우리가 출발한 논산쪽에서는 좀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네이버지도에서 캡쳐한 지도를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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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지역에서도 지도를 참고 한다면 그리 어렵지는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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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를 뒤로 하고 우리 일행은 위봉 산성으로 향했다.

송광사 주변에는 마땅한 식당이 없다.

 

오후 2시 29분...

아침도 거른 이 몸은 허기진 배를 욺켜지고 차에 올랐다.

 

그래 가자!!!

 

송광사에서 가까운 위봉산성으로...

 

 

[2009년 1월 31일 전북 완주 송광사를 다녀와서...  계룡도령 춘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