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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종교/역사

MBC 드라마 '동이' 영조는 경종 독살설 속에서도 탕평책과 균역법을 실시하는 성군의 모습이었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는 역사드라마 '동이'를 우연히 한번 보게 되면서 갑자기 생각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숙종과 경종 그리고 영조와 사도세자이야기입니다.

거기에는 독살설과 영조의 컴플렉스가 빚어 내는 정말 한편의 드라마가 들어 있습니다.

 

이번에 모 TV방송사에서 방영하는 역사 드라마 '동이'

아무리 드라마라고 해도 내용이야 역사의 줄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겠지요?


출처: iMBC 동이 공식 홈페이지

 

아무튼

천한 무수리 '동이'가 어느날 숙종의 은총을 입어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우여곡절 끝에 왕이 되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의 이야기도 나올지 모르겠습니다만,

역사는 숙종의 연애담에서 급 진전하여 영조가 왕이 되고, 하지만 그 과정에 영조가 이복형님인 경종을 독살하였다는 독살론에 발이 묶여 결국은 영조의 독살설을 주장하는 소론과 함께하는 아들 사도세자 마저 죽이게 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영조에게는 두가지 커다란 컴플렉스가 있었을 것입니다.

가장 큰 하나는 출생에 관한 것으로 후일 영조가 되는 연잉군의 어머니는 미천한 무수리 출신 '동이'

극중에서야 숙빈 최씨가 품위를 갖추고 인품이 대단한 듯이 표현을 했지만 역사란 언제나 승자의 편에서 서술 되는 것이고, 더구나 극의 전개도 숙종과 무수리 '동이'와의 사랑을 시작으로 한 것이니 극중에서는 더 더욱 숙종의 애간장을 녹이는 매력 덩어리로 묘사하여야 할 것입니다.

인품이나 교양 등 품격은 드라마와 맞지 않았을 지라도 사실 남자를 휘어 잡는 매력은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왕이 되고 난 후 죽은 숙빈 최씨의 신분을 높이기 위해 여러차례에 걸쳐 이름을 내리며 신분 세탁을 시도 합니다.

^^ 

숙종은 정비 서인출신인 인현왕후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하고 결국은 남인 출신 장희빈에게서 아들을 얻게 됩니다.

이 이가 바로 경종!!!

 

숙종의 아들로 어머니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희빈 장씨입니다.

장희빈!!!

우리나라의 사극이나 역사 영화에서 가장 많은 주제가 된 것도 이 장희빈이란 인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현왕후와 장희빈 간에 각자의 세파를 업고 벌어지는 이야기야 여기서 논할 바는 아니고,

 

숙종이 희빈 장씨로부터 더 많은 아들을 얻거나 했으면 좋으련만 숙종은 경종외에도 또하나의 아들이 생기게 되니 이것이 바로 드라마 '동이'에서 이야기하는 사랑놀음인 것입니다.

우연히 눈이 맞은 무수리가 숙빈이 되고 이 숙빈이 된 최씨는 첫아들을 잃고 사가로 쫒겨나고,

거기서 또 우연히 찾은 숙종과의 하룻밤에 잉태하게되는 영조!!! 이것이 드라마상의 설정입니다만,

 

사실 숙빈 최씨는 숙종과 인연을 맺은 후 몇 달 지나지 않아 임신을 해 숙원으로 봉해집니다.

최씨는 아들만 둘을 연년생으로 아이를 낳았습니다.

1693년(숙종 19) 10월 첫째를 낳고 이듬해 9월 둘째를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불가능 한 것은 아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무리가 좀 따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윤달이 들거나 했다고 가정을 해 보면 뭐 이해 못할 일도 아닙니다.

^^

당시 최씨는 드라마처럼은 아니었을지언정 숙종에게는 상당히 사랑을 받고 있었나 봅니다.

아이 셋을 낳은 최씨는 숙원(종4품)에서 숙의(종2품), 귀인(종1품)이 되고 결국은 숙빈(빈: 정1품)이 되었습니다.

 

아무튼 수빈최씨가 아들을 낳음으로 해서 정실이 없는 숙종에게서 권력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되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하여간 그렇게 해서 역사의 큰 줄기는 변화를 맞게 됩니다.


하지만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는 자신의 미천한 신분 때문에 평생을 무수리의 아들로 살아야 할 아들을 위해 연잉군(영조)을 서인출신인 인현왕후가 후사가 없자 서인 측에서 들인 후궁 영빈 김씨에게 양자로 입적시킵니다.

 

이런 사람이 품위가 있고, 성품이 착하기만 했을까요?

저는 아마도 요부같은 매력을 지닌 여자 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워낙에 장희빈과 인현왕후간에 암투가 심하다 보니 서술이 적어서 이겠지만, 어린 아들을 양자로 보낼 정도의 정치적 야심과 욕망이 있었던 여자 같습니다.
아무튼 이 양자 입양으로 인해 경종의 배경은 남인, 영조의 배경은 서인이 되어 버립니다.

 

영조에게 또 하나의 컴플렉스는 나중에 사도세자를 만드는 계기가 된 경종 독살설입니다.
 

경종이 즉위한지 4년째 되던 해 8월.

어릴 때 부터 병약했던 경종이 더위에 여러날 병세가 좋지 않은데다 입맛도 없어하자 임금의 병을 책임지고 관리하던 연잉군(영조)은 수랏상에 게장과 생감을 올립니다


이를 본 어의가 게장과 생감은 동시에 먹는 것을 꺼리는 서로 상극인 음식이라며 반대하지만 게장에 입맛을 되찾은 경종은 유난히 식사도 많이 하였고, 생감 또한 후식으로 먹게됩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날 밤 경종은 급격하게 병세가 나빠지고, 어의가 올리는 부자가 든 탕약으로는 전혀 차도가 없게 됩니다.

 

이때 차도가 없음을 이유로 연잉군[영조]은 인삼차를 올리라 합니다.

어의는 현재 처방 중인 약재에 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자가 들어 있어 인삼과 같이 열을 올리는 약재는 상극이라며 극구 반대하지만 영조의 명으로 인삼차를 올리게 되고, 그날밤 병세가 더욱 악화된 경종은 다음날 새벽 승하하고 맙니다.

 

이 일로 인하여 영조는 재임 기간 내내 독살설로 마음 편하게 보낼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독살이라고 하는 그 과정에서 조선의 제20대 임금인 경종(1720 ~ 1724)의 사인을 놓고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바로 게장과 생감입니다

 

본초강목에 의하면 게장도 생감도 찬 성질을 가진 음식으로 이를 같이 먹게되면 심한 복통과 설사를 일으킨다고 되어있습니다

 

게장은 염도가 높아 위산을 많이 분비시키고 생감은 탄닌 성분이 있어서 위산과 혼합되어 딱딱해지게되고 이렇게 딱딱해진 덩어리가 소장 말단 부위에서 걸리면 장폐쇄증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직접적인 사인은 게장과 생감은 아닐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직접적인 사인은 평소 몸이 찬 경종을 위해 어의가 부자탕 등 부자가 든 탕재를 올렸을 것인데, 이를 안 영종의 세력들이 부자와는 상극인[이는 필자가 먹어보고 죽었다 살아나 봐서 앎] 인삼을 처방하여 기혈이 뒤집혀 고열에 의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필자의 추정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

영종이 어의와 다투어가며까지 특별 처방을 고집한 것은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가 보아도 문제가 되는 처신임에는 분명합니다.

 

아무튼 게장과 생감은 상극이므로 배탈이 날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파란지붕밑에 사는 모씨에게 꼭 먹이고 싶습니다.

^^

 

그럼 우리가 알아 두면 좋을 상극 음식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 상극 음식 **
감과 간요리 - 감이 간에 많은 철분의 체내흡수를 방해.
감과 게요리 - 게와 감을 함께 먹으면 소화불량과 식중독에 걸릴 수 있슴.
감과 도토리묵 - 도토리묵과 감을 함께 먹으면 변비가 생길 수 있슴.
근대와 시금치 - 근대와 시금치를 함께 먹으면 체내에 결석이 생기기 쉬우며 담석증에 걸릴위험이 높아짐.
녹차와 선지 - 녹차게 들어있는 성분이 선지에 풍부한 철분의 흡수를 방해 함.
매실과 로얄제리 - 로얄제리의 생리적 활성물질을 매실이 파괴.
멸치와 시금치 - 멸치의 칼슘 흡수율을 시금치의 수산이 떨어뜨림.
문어와 고사리 - 문어와 고사리를 함께 먹으면 소화 방해.
바지락과 우엉 - 바지락의 철분 흡수를 우엉의 섬유질이 방해.
복숭아와 장어 - 복숭아가 장에 자극을 주어 자칫 설사를 일으키기 쉬움.
수박과 튀김요리 - 수박은 위액을 엷게 만드는 작용을 하는데 기름기가 같이 들어가면 소화가 잘 되지 않음.
자두와 날짐승 요리 - 송화단(삭힌 오리알)과 같이먹으면 중독이 될 수있고 닭고기, 청어구이 등과도 잘 맞지 않음.
조개와 옥수수 - 부패균 번식이 잘되는 조개와 소화력이 떨어지는 옥수수를 함께 먹으면 배탈 나기가 쉬움.
콩과 치즈 - 콩과 치즈속의 칼슘흡수가 잘 되지 않음.
홍차와 꿀 - 홍차의 영양 성분의 인체 흡수를 꿀이 방해.

 

영조는 사도세자 건만을 제외하고 보면 괜찮은 임금인 것 같습니다.

인제를 당파에 관계없이 고르게 등용하는 탕평책과, 군포의 부담을 덜어주는 균역법을 실시하여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 주었습니다.

그때 탕평책을 논하던 자리에서 함께 먹었던 묵 무침이 바로 지금의 탕평채입니다.

그리고

영조는 학문을 좋아하여 '어제자성편'같은 책을 직접 짓고, 학문을 장려하기 위해 많은 책을 펴내게 했습니다.

이때 실학이 발달하여 성호 이익은 실학 사상이 담긴 '성호사설'30권을 펴냈으며, 그의 제자 안정복은 고조선부터 고려까지의 역사를 편년체로 서술한 '동사강목'20권을, 국문학 분야에서도 '훈민정음운해' '해동가요' '성춘향전' 등의 책들이 편찬되는 시기였습니다.

 

적어도 그옛날이었지만, 지금처럼 서민을 죽이는 부자감세나 능력 없고 파렴치 잡범이라도 내 사람만 고집하는 이런 시대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영조처럼

지금의 이 정권도 역사가 심판하겠지요.

 

모르지요.

후대에 4대강죽이기와 MB커넥션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될지~~~

 

ㅎㅎㅎ

쓴 웃음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