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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풍경이야기

세종시 명소 천연 고찰 비암사 그 힐링의 공간

 

 

세종시 명소 천연 고찰 비암사 그 힐링의 공간

 

 

세종특별자치시에는 곳곳에 역사가 창연한 고찰과 명성이 높은 사찰이 즐비합니다.

 

그 중 하나

계룡도령이 훌쩍 떠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만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로

삼국시대에 창건된 절이라고 전하고 있는 천년 고찰이며

백제의 마지막 종묘사찰로 알려져 있는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다방리에 있는 사찰 비암사[碑巖寺]를 소개할까 합니다.

 

    

고복저수지[고복자연공원]에서 잠시

한적한 시골길을 달려 살짝 꺾어 들면 만나게되는 호젓한 숲길을

조금 더 달려 만나게 되는 비암사의 주차장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잘 쌓아 올린 옹벽 위에 있는 비암사 대웅전 마당으로 오르다 보면

계단 곁 담장 아래 한 소식이 앉아 있습니다.

 

'아니 오신 듯 다녀 가소서'

 

불교에서 윤회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윤회의 끝은 그 동안의 삶 속의 모든 인과 연을 끊고

해탈하여 부처가 되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오고 감이 인과 연으로 엮이 듯 얽혀 있음에

흔적조차 없이 오고가라함은 커다란 깨닳음의 가르침인 듯 합니다.

 

 

여느 절처럼 일주문도, 사천왕문도 없는 비암사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다 보면

우측에 흉년에는 잎이 밑에서부터 위로 피어 오르고,

풍년에는 위에서 아래로 피어내린다는

800년 넘은 느티나무가 모든 것을 대신하듯 절집 마당을 굽어보고 있습니다.

 

이 보호수는 느티나무로 수령은 810년 정도이며,

나무의 높이가15m, 나무 둘레 는 7.5m에 달하는 큰 나무입니다.

 

그 넉넉한 품을 보면 느티나무의 위용을 절로 느낄수 있는데

신기하게도 '아니 오신 듯 다녀 가소서' 편액이 기대어져 있는 곳으로는

가지가 성기게 자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느티나무조차 아니 온 듯 다녀 가기 위해 흔적을 줄이는 것은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

 

비암사의 경우 확실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 말에 도선(道詵)이 중창하였다고하고

조선시대 후기에 편찬된 '전역지(全域誌)'에 비암사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라 문무왕(661~680) 시절의 것으로 보이는 비암사의 석비(石碑)에

요고(腰鼓), 퉁소(洞簫)·쟁(箏)·소(簫)·횡적(橫笛)·고(鼓)가 부조(浮彫)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비암사의 연대를 추측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합니다.

 

1,400년여 전 백제가 막을 내릴 시기에 백제 유민들이 계유년 (673년)에 석불비상 등을 짓고

백제 대왕과 백제 부흥 운동군의 영혼을 달래는 제를 지냈다는 기록에 따라

비암사에서는 매년 4월 15일 백제대제를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잔디가 잘 거꾸어진 꽤 넓은 절집 마당을 가진 비암사는

산신각[山神閣], 극락보전[極樂寶殿], 대웅전[大雄殿], 명부전[冥府殿]이

설선당[說禪堂]과 향적당[香積堂],오관료[五觀寮] 등의 요사채보다

한 단계 이상의 자연석 기단 위로 각 용처에 맞게 높이가 정해져 자리하고 있습니다.

 

 

1995년 중수한 극락보전은

자연석을 기단으로 사용하고 배흘림 기둥으로 지어 운치를 더하는 모습입니다.

 

극락보전은 1978년 12월 30일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79호로 지정되었다가

2012년 세종시 승격에 따라 해제되어 같은 해 세종특별자치시 시도유형문화재 제1호로 재지정된 곳입니다.

 

이러한 극락보전 앞마당에는

고려초 제작된 것으로 추측되어 1985년 7월 19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19호로 지정되었다가 해제되고

2012년 12월 31일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원래 이 자리가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고도 하는 이 3층석탑은

높이 3m 가량이며 1960년 3층석탑 정상 부분에서 사면군상(四面群像)이 발견되었는데

이 석상 중 발원자인 전씨의 관등 중에 달솔(達率)과 같은 백제의 관등명이 나타나는 등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의 유민들에 의하여 조성된 것으로 확인된

'계유명전씨아미타불삼존석상[癸酉銘全氏阿彌陀佛三尊石像]은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06호로 지정되었고,

그 조각 수법으로 보아 계유명전씨아미타불삼존석상과 같은

673년 백제가 멸망하고 오래지 않은 시기에 조성된 석상으로 추정되며

백제의 석조미술을 보여 주는 사료(史料)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미륵보살반가석상(彌勒菩薩半迦石像)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368호로 지정되었으며

또한,

같은 시기에 발견되어 “己丑年二月十五日 此爲七世父母及ㅁㅁㅁㅁㅁ阿彌陀佛諸佛菩薩像 敬造” 라는 명문이 있어

689년(신라 신문왕 9)에 조성된 것임을 알수 있는

기축명아미타여래제불보살석상(己丑銘阿彌陀如來諸佛菩薩石像)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367호로 지정되었는데

국보106호는 국립청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두점의 보물은 공주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고 합니다.

 

 

석탑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기단부는 높아지고 커진 반면에 탑신부를 좁고 길게 만들어 안정감이 다소 결여되었지만,

비교적 통일신라 후반의 석탑 조성수법을 잘 보여주는 아름다운 탑으로

기단부는 여러 개의 판석(板石)을 사용하여 만들어졌고

탑신부의 탑신(塔身)과 옥개(屋蓋)는 떨어져 상륜부(相輪部)는 노반(露盤)만 남고 모두 없어졌으나

1982년, 없어진 기단부(基壇部) 부재 일부를 보완하였다고 합니다.

 

극락보전은 현재 비암사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으로

1974년에 보수, 1995~96년에는 전면 해체보수가 이루어진 조선시대 후기의 다포계 불전입니다.

 

 

극락보전은 서방극락정토를 주관하는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모신 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다포식(多包式) 건물로 띠살문을 달았고

지붕의 가구형식은 대들보가 앞뒤 평주(平柱)에 걸쳐 있으나

불단(佛壇) 좌우에 옥내주(屋內柱)를 세웠으며

수려한 닫집 속에 아미타불이 자리하고 있어 그 멋스러움이 더합니다.

   

 

극락보전 좌측에 위치한 대웅전(大雄殿)은

1991년에 조치원읍에 살던 청신녀(淸信女) 정영희(丁英姬) 여사(女史)의 시주로

당시 주지였던 이진우 스님이 창건한 불전이라고 합니다.

 

 

전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이루어진 불전형식의 전형적인 건물로

평면은 내부에 기둥을 세우지 않은 통간(通間)으로 구성하였고,

불단을 후면 벽까지 완전히 후퇴시켜

불단 앞의 예불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는 배치인데

최근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대웅이란,

큰 힘으로 사마(四魔)를 항복시킨다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

이렇게 붙여진 것은 부처님의 덕호(德號)에서 유래한 것으로

큰 영웅인 석가모니를 이르는 말이며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부처와 좌우에 협시불이 모셔져 있는데

일반적으로 오른쪽이 관세음보살, 왼쪽은 지장보살입니다.

 

다음으로 대웅전의 좌측에 명부전[冥府殿]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명부[冥府]란 염마왕이 다스리는 유명계 또는 명토(冥土)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고,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모시고 죽은 이의 넋을 인도하여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전각으로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신 곳이므로 지장전이라고도 하며,

지옥의 심판관 시왕을 모시 곳이므로 시왕전[十王殿], 저승과 이승을 연결하는 전각이므로

쌍세전(雙世殿)이라고도 불리는 불전입니다.

 

 

명부전은 1995년에서 1996년에 걸친 중창불사 때 창건된 불전입니다.

 

극락보전 앞마당의 남쪽 끝에 위치한 설선당(說禪堂)은 스님들의 선방(禪房)으로 사용되고 있는 공간인데

1996년에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극락보전 앞마당 북쪽 끝에는 1995년에서 1996년에 걸쳐 조성되어 운영되고 있는 요사채가 위치하고 있는데

스님들의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오관료(五觀寮)와 향적당(香積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 전면 모든 기둥에는 정면에 모서리 기둥에는 정면 외에 측면에도 주련을 달아 모두 9개의 주련이 있습니다.

 

 

1991년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산신각,극락보전과 대웅전 틈으로 나 있는 산신각으로 가는 길이 무척이나 정겹게 보입니다.

 

 

요사 오관료 앞마당,

서쪽 끝 축대 위에 1996년의 중창불사 때 지어진 범종각(梵鐘閣)이 있는데

범(梵)이란 우주의 근본 원리를 나타내는 것으로

범종은 이런 우주의 소리를 전하는 수단으로

이 소리를 듣고 중생이 깨달음을 얻기를 바라는 의미인데

범종외에 운판도 함께 있습니다.

 

다른 사찰의 범종각과는 달리 목어가 없습니다.

 

 

아침저녁마다 울리는 1997년 조성된 범종의 장엄한 소리는

\중생을 착한 길로 인도하며 해탈의 길로 승화시키고

지옥에 떨어져 고통받고 있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것입니다.

 

범종각 옆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화장실과 주차장이 나오고

그 아래로 조금 더 내려가면 우측으로 개울 건너 부도탑 2기가 보입니다.

 

두 개의 부도 중 왼쪽의 탑신에 '淸閑堂性淨塔'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부도의 주인과 부도의 이름을 알 수 있지만

오른쪽에 있는 부도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지 않아 그 유래를 알 수는 없습니다.

 

이 두 부도는 석종형(石鐘形) 부도로서 조형이 비교적 단순하고 형식화된 반면

일부에는 장식 또는 과장의 경향을 보이는 조선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부도의 형태를 지녔다고 합니다.

 

 

창건연대가 명확하지 않다는 비암사는

대략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로 이어지는 무렵에 창건된 것으로 보는 이유를 보여주거나

백제가 막을 내리면서 비암사 인근에서 백제부흥운동이 있어왔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곳 비암사 주변에는 금이성, 이성, 고산산성, 운주산성 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비암사의 입구에는 다비숲 공원이 있는데...

다비 후 유골 안장이나 수목장을 위한 공간인지

또는 다른 이유가 있는 공간인지 전혀 알 수없는 공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푸른 자연속에서 여유롭게 둘러보고 즐기며 힐링하던 계룡도령의 눈에 이상한 모습의 석등이 보엿습니다.

 

이리저리 아무리 보아도 일본에서나 보던 일본식 석등인데...

 

이런 석등이 왜 여기에 자리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다비숲공원을 관리하는 주체가 어딘지 한번 살펴 보고 문의를 해 보아야 할 것같습니다.

 

 

그리고 미처 소개하지 못한,

아니 보지 못한 것이 하나 더 있는데

비암사에 있는 도유형문화재 제182호인 연기비암사영산회괘불탱화(燕岐 卑岩寺 靈山會掛佛 幀畵)입니다.

이제 세종시 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었으니

세종 비암사 영산회괘불 탱화(世宗 卑岩寺 靈山會掛佛 幀畵)로

이름이 바뀌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

 

길이 863cm 폭 486cm의 엄청난 크기로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나타낸 영산회상도로

17세기 이후 불화들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형식을 띠고 있다고 하는데

괘불 탱화는 대웅전내 나무 함에 원본이 보관되어 있으며

매년 4월 15일 백제대제때 밖으로 나와

일반인과 마주한다고 합니다.

 

1년에 한 번 이 날만 세상밖으로 외출을 나온답니다.

^^

 

우연히 나선 길에 만나

푸른 자연 속에서의 힐링을 통해 되 살아난 계룡도령 춘월~~~!!!

 

가온누리 아띠 세종의 아름다움 자연은 언제나 우리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하는 것 같습니다.

 

가족 모두가 다니기에도 좋은 비암사...

아니 친구나 연인끼리 조용한 데이트 코스로도 참 좋은 것 같습니다.

^^

 

비암사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다방리 4

044-863-0230

 

 

 

[2013년 8월 28일 불쑥 연결된 부산 친구의 전화에 흔들린 마음을 고찰의 소개로 다잡으며 계룡도령 춘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