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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풍경이야기

'공주 구도심에서 미래를 만나다' 공주시 근대문화유산 재조명

 

 

 

'공주 구도심에서 미래를 만나다' 공주시 근대문화유산 재조명

 

 

공주시는 (재)충남역사문화연구원과 함께 그 동안 백제사에 묻혀 빛을 보지 못했던 공주 구도심 문화유산을 대상으로 한 역사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게되었는데 그 동안 공주는 고대 백제의 도읍으로 많이 알려져 있어서 공주하면 곧 백제중심의 이미지가 강하여 무령왕릉, 송산리 고분군, 공산성 등 찬란한 백제 문화유산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은 높은데 비해 상대적으로 조선시대 충청감영 유적이나 공주의 효(孝) 문화의 효시라 할 향덕과 이복, 그리고 근현대 격변기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저조하였던 바 이번에 역사 속의 공주를 제대로 알리고자 시작하게된 공주 구도심 역사체험 프로그램은 중학동, 웅진동, 옥룡동 등에 산재한 조선시대와 근대 문화유산을 활용하여 구도심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시민과 함께 강좌 및 답사를 통해서 음미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있습니다.

 

 [클릭하면 큰 사진으로 볼 수있습니다.] 

 

오후 2시 충청남도역사박물관에서 사진으로보는 공주의 역사 강좌가 있었습니다.

 

 

미처 몰랐던 근 현대사 속의 공주시내의 모습을 보며 새삼 발전상을 실감하게 되었는데요.

 

 

흑백사진 속 공주시가지의 옛 모습입니다.

 

 

충남역사박물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공주의 역사를 하나하나 알아가고 있습니다.

 

 

충남역사박물관 또한 많은 건축학도들이 찾는 곳으로 일제강점기인 1940년 충청도 감영청이었던 선화당을 이건하여 공주박물관을 개관하면서부터 박물관의 전시기능을 담당하였는데 무령왕릉이 발굴됨으로써 그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1973년 현재의 박물관 건물을 신축하였으며, 2004년 국립공주박물관이 웅진동으로 이전함에 따라 2006년 옛 박물관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충남역사박물관을 개관한 것입니다.

 

박물관 앞마당에는 선화당으로 올라가던 돌계단과 석축이 그대로 남아있어 그 시절의 모습을 짐작케 하며, 무령왕의 관재로 사용하였던 금송도 세 그루가 있는데, 커다란 금송의 위용도 큰 볼거리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곳의 벚나무들은 다른 곳에 비해서 상당히 큰 편인데 1923년 4월 16일 동아일보에 ‘공원전체가 벚꽃과 불빛으로 눈부셔 밤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는 기사가 있어 예부터 벚꽃명소로 이름난 곳 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2009년 발견된 박물관 주차장의 우물은 일제강점기에 아메미야 다다마사가 이곳에서 얼음공장을 운영하던 당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마미야 다다마사가 벚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어 흥미로운데 그 아들 아마미야 히로스케는 선친이 공주에서 수집한 유물을 박물관에 기증 하였으며, 기증유물들은 상설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충남역사박물관을 출발한 탐사팀은 바로 옆 영명중학교 - 선교사의집 - 공주목 관아터 - 공주 제일감리교회 - 대통사지 - 김갑순 집터 - 공주 구읍사무소 - 중동성당 - 포정사 - 선화당을 끝으로 탐방이 끝났습니다.

 

 

보물 제150호로 지정된 공주 반죽동 당간지주는 절에서 중요한 행사나 법회가 있을 때 큰 깃발을 걸어서 행사를 알렸는데, 이 깃발이 당간이고 당간을 지탱하는 석조물이 지주인데 백제시대 최초의 사찰로 전해지는 대통사의 터 한 켠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대통(大通)’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 조각이 발견되기도 하였으며, 주변에 2개의 석조 등이 자리잡고 있어 ‘대통사지’로 전해지는 곳이지만 1999년 조사결과, 지금의 대통사지로 추정되는 지역은 실제로 기록상에 나타난 대통사지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혀졌는데 대통사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유물이 이곳에서 반출된 것은 사실이지만, 사지와 관련하여 직접적인 유구나 유물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반죽동 당간지주는 전체적으로 소박하고 간결한데 한국전쟁으로 폭격을 맞아 기단부 전체가 훼손되고 동시에 동측의 지주 하단부도 손상되었습니다.

장방형의 받침돌 상면에는 별다른 조각은 없으나, 측면에 안상(眼象)이 음각되어 있는데 이 안상의 조각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현재까지 알려진 당간지주들은 대부분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것이며, 그 이전에 조성된 예는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등록문화재 제433호로 지정된 구 공주읍사무소는 공주의 근현대사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1920년 충남금융조합연합회의 회관으로 처음 준공되었으며 건물이 위치한 반죽동 일대는 1920년대 공주의 중심 시가지로 법원과 경찰서, 우편국 등 각종 공공시설이 지척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1931년 공주면이 공주읍으로 승격되면서 이 근대식 건축물은 1985년까지 읍사무소로 이용되었고, 1986년 공주가 시로 승격되자 약 4년간 시청으로 사용되었으나 개인소유로 미술학원을 운영하던 것을 2009년 공주시가 매입하여 문화재로 등록하였고 이 건물을 공주의 근대사를 상징하는 역사현장이자 지속적으로 활용 가능한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할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고, 현재는 공주의 옛 모습과 우리 이웃들의 추억을 함께 되돌아 볼 수 있는 ‘공주역사영상관’으로 재탄생되어 1층은 상설전시관인 역사영상관, 2층에는 기획전시 및 다목적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선화당은 웅진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충남유형문화재 제92호 선정되었고, 조선후기 충청도관찰사가 집무를 보던 곳으로 조선시대 관찰사가 정무를 보던 곳을 감영이라고 하는데, 선화당은 감영 안에서도 가장 중요한 공간이었으며, 도내의 모든 행정업무와 군사ㆍ조세는 물론 송사ㆍ형옥 등 사법 업무까지 이루어지던 곳이랍니다.

 

충청감영의 선화당은 본래 감영이 있던 반죽동(현 공주사대부고 자리)에 있었으나 1932년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였고, 1937년에는 중동(현 충남역사박물관부지 내)으로 옮겨져서 박물관의 전시실로 사용되었다가 1972년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하기 위해 국립공주박물관 건물이 신축ㆍ개관한 뒤로는 전시실로 사용하지 않고 보존만 하다가 1992년 현재의 위치인 국립공주박물관 입구로 옮겨 세웠으며 선화당은 ‘임금의 덕을 드러내어 널리 떨치고 백성을 교화한다’는 뜻에서 따온 것으로 조선시대 관찰사의 임무와 성격을 잘 보여준다하겠습니다.

 

 

공주 구도심 역사문화체험 프로그램은 성인을 대상으로 ‘사진으로 보는 구도심’강좌와 답사를 결합한 프로그램, 또, 청소년을 대상으로 ‘충청감영을 만나다’, ‘효자를 만나다’라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공주시는 충남역사문화연구원과 함께 3월부터 본격적으로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다고 합니다.

 

시관계자는 “이번 공주 구도심 역사문화체험 프로그램을 통해서 백제사와 함께 조선시대 공주, 근현대 공주의 모습을 함께 조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며 인기가 높아 3월 참가신청은 일찌감치 마감 되었고, 충남역사박물관 홈페이지를 통해서 4월과 5월 참가자 모집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공주의 구도심에서 미래를 만나다' 프로그램 참가자 모집 바로가기

 

[클릭하면 큰 사진으로 볼 수있습니다.]

 

3월 중 충남역사박물관 역사문화체험 프로그램 '공주 구도심에서 미래를 만나다'는

3/16, 3/19, 3/24, 3/26, 3/31 진행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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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12일 진행된 '공주 구도심에서 미래를 만나다'를 소개하며 계룡도령 춘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