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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풍경이야기

옛 길따라 역사따라[백제의 웅진시대 대통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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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사지(大通寺址)
백제의 문화예술은 백제의 건국과 더불어 시작되었겠지만 뚜렷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불교(佛敎)의 수용 이후부터 잡는 것이 보편적이며, 불교문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백제가 공식적으로 불교를 받아들인 것은 고구려보다 12년 늦은 침류왕 원년(384)으로 동진(東晋)의 마라난타(摩羅難陀)에 의해서이다.
그 다음해에는 수도 한산(漢山)에 절을 짓고 10명의 백제 승려까지 배출하게 되었는데, 이 때 봉안한 불상이 수입불상이었는지 국산불상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대통사는 백제 성왕 4년(526)에 창건된 사찰로 불교가 백제로 전래된지 142년만이다.

대통사의 흔적은 공주시 반죽동의 당간지주가 있는 곳에 함께 남아 있다.

대통사에 대하여《三國遺事》흥법조에는 “大通元年丁未 爲梁帝創寺如熊川州 名大通寺”라 적고 있다.
이는 대통 원년, 즉 성왕 4년에 중국 양나라의 제를 위해서「大通寺」라는 절을 창건하였고 이 절이 웅천주 즉 공주에 있다는 내용이다.

삼국유사의 글귀를 문제 삼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의 백제는 불교국이었지만 사대주의의 발상으로 중국을 위해 수도 한가운데에 엄청난 크기의 절을 지었다는 것이 이해가 가는가?
그것도 고작 63년간 도읍으로사용한 곳에... 


대통사지로 추정되는 공주시 반죽동에서는「大通」명의 와편이 출토되었고 더불어 이곳의 많은 불적에 의해 쉽게 그 위치가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대통사지 역내에는 민가 및 시가지가 조성되어 있어 사적은 상기 유적 이외에는 찾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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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주박물관 외부에 전시되어 있는 대통사지에서 발견된 석조 수구 2기]

 

현존 대통사지 역내에서 발견되는 유적은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이는 당간지주 1기와 이곳에서 공주박물관으로 옮겨진 석조 2기가있다.

이외에 대통사지 역내에서 출토된 백제 연화문 와당이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어 대통사의 존재를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다.

대통사지에 남아있는 유물로는 당간지주(보물 제150호), 대통교 초석이 있다.

대통교 초석은 이 절의 창건 당시부터 이 절 안의 제민천(濟民川)에 설치되어 있던 다리인 대통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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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사의 주춧돌로 추정되는 석물과 대통교의 기단 석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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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현재의 대통사지 옆에는 친일로 치부한 공주갑부 김갑순의 옛집터가 나란히 있다.]

 

옛시가지 한가운데에 위치한 대통사지 ...

내가 공주의 계룡산으로 온지가 얼마인데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이곳을 알게해 준

내 블로그 이웃청수난댕이[ http://blog.naver.com/jhk5004k ]의오천사에 따르면 국립공주박물관에 전시중인

반죽동석조, 중동석조라 부르는 석재수구 2기의 이름을 대통사 석조라고 불러야 한다고 한다.

 

사실 국립공주박물관에서도 "대통사석조"라고 이름 붙여두고 "반죽동석조", "중동석조"라고도 한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2008년 9월 6일 공주시 반죽동 대통사지를 다녀와서  계룡도령 춘월]

 

 

[찾아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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