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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유아 건강검진, 성인 검진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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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영유아 건강검진, 성인 검진과 다르다”

사망원인 대부분 ‘사고’…“혈액 검사 등 의미 없어”
성장·발달 관찰 중요…부실 검진기관 내년부터 ‘퇴출’
등록 : 2008-08-25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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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유아 건강검진 중 개인·사회성 검사를 하는 모습 <사진=손소아청소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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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가족부는 지난해 11월 15일 ‘영유아 건강검진’(이하 건강검진) 제도를 의욕적으로 시작했다.
제도 준비 기간은 1년도 채 안됐지만 영유아 시기를 국가 건강검진 대상에 포함시켜 4개월부터 만 5세까지 5차례에 걸쳐 성장·발달과 관련된 검진과 안전수칙 교육 등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아이의 건강을 추적 관리, 질병을 예방하고 조기 치료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영유아기는 평생에 걸쳐서 가장 빠른 성장과 발달을 보이는 기간으로, 이 시기의 다양한 습관들은 일생동안 영향을 주기 때문에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위한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건강검진과 관련 안내장 발송, 수검률 집계, 민원상담 등의 실무를 맡고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올해 검진대상 영유아는 약 230만명이다. 이달 초 기준 영유아 검진기관으로 등록한 의료기관은 2,800여개며 이중 소아과가 검진기관의 약 65%를 차지하고 있다. 이밖에 내과, 가정의학과, 이비인후과 의원이 등록돼 있다.
의사라면 누구나 4시간의 관련 교육을 이수하면 건강검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며 현재까지 교육을 이수한 의사는 6,000여명이다.
건강검진 서비스 자격을 얻기 위한 교육에 많은 의사들이 몰려 교육장의 좌석이 부족할 정도로 과열 조짐을 보였다고 한다. 건강검진이 출산율 저하에 따른 소아과 관련 의료기관들의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의료기관이 받는 건강검진 수가는 검진 항목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1~5차까지의 1회 검진에 최대 2만2,470원, 최소 1만5,870원이다. 3·5차에 받는 구강검진을 위해선 치과에 가야하며 진료 수가는 1만360원이다. 구강검진기관은 약 900여 곳이 있다.

 

수검률 30% 넘어… “결과도 유의미”


건강검진은 시행 약 9개월인 현재까지의 수검률과 검진결과를 볼 때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건강검진이 시작된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8월 초까지의 검진대상 영유아 약 150만명 중 약 54만명이 검진을 받아 수검률이 30%를 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관리실 윤이영 차장은 “성인검진은 시행 초년도에 수검률이 약 15%였다”며 “영유아 건강검진의 경우 의료기관이 검진수가 청구를 3년 내에 할 수 있도록 돼 있어 수검률의 정확한 추계가 힘들지만 8월 초 기준 33%에 이른다”고 말했다.
검진을 받은 영유아 54만명을 1~5차의 검진 시기별로 나눠 보면 각각 13만, 10만9,000, 11만7,000, 10만, 7만9,000명이다. 공단은 올해 건강검진 대상자 약 230만명 중 3분의1이 건강검진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까지 진행된 건강검진 판정현황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 소아과 전문의들의 의견이다.
종합판정 결과 검진을 받은 영유아의 4.1%에서 질환이 의심됐으며, 7.1%는 주의가 요구됐다. 또 발달선별평가에선 발달지연의심 1.4%, 추후검사 4.3% 등의 결과가 나왔다.<표1 참조>


대한소아과학회 신손문 사회협력이사(관동의대 제일병원 소아과)는 “건강검진 중간 판정현황은 예방적인 측면에서 의미 있는 결과”라며 “아이들의 건강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장과 발달을 관찰해 문제점을 찾아내는 것인데 지금까지 제대로 해오지 못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혈액·소변 검사 하지 않는 이유


건강검진 시행 첫해 수검률이 높고 이를 바탕으로 한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영유아 건강검진에 대한 부모들의 이해 부족과 성의 없는 의료진의 검진 탓에 부풀려진 바람이 언제 빠질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부모 입장에서 보면 건강검진은 알맹이 없는 설문지 작성에 불과할 수도 있다. 건강검진 안내장을 받고 근처 병의원을 찾으면 문진표 작성 후 아이의 키·몸무게를 측정하고 문진표에 따라 성장·발달 및 안전사고에 대한 의사의 설명을 듣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국민 대부분이 건강검진하면 떠올리는 혈액·소변 채취 검사를 통해 ‘이상 없다’는 말을 듣지 못한다는 뜻이다.
일산병원 소아청소년과 정희정 교수는 “영유아기는 일생 중 질병에 대한 부담률이 가장 낮은 시기이므로 성인과는 달리 혈액검사나 소변검사를 통해 질병을 찾는 것보다 이 시기의 중요한 건강문제인 안전사고에 대한 예방 차원의 육아지도를 실시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며 “영유아기의 혈액, 소변검사는 실시근거가 충분치 않아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선진국에서도 무증상 영유아에게는 권고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영유아 건강검진에 혈액이나 소변검사가 포함되지 않은 것은 타당하다”고 말했다.
통계청의 2005년 사망원인통계 결과 보고서의 10세 미만 소아의 사망원인을 보면 1~9세 사이의 사망원인은 1·3·5위가 모두 안전사고에 따른 것이다.<표2 참조>


복지부는 이같은 이유로 영유아 건강검진 프로그램 도입 시 관련 학회와 외국의 영유아 검진 가이드라인을 충분히 검토하고 혈액·소변검사를 검진항목에서 배제했다고 설명했다. 유병률이 낮은 질병 검사보다 성장과 발달을 추적·관리하는 질병 예방 위주의 검진체계로 방향을 잡은 것.
보건복지가족부 건강정책국 김한숙 사무관은 “영유아기에는 정상적으로 성장·발달하고 있는지 주기적으로 검사하고 부모를 대상으로 사고예방, 영양관리 등에 대해 교육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검진 근거가 빈약한 혈액, 소변검사를 실시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며 오히려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만 준다”고 언급했다.

 

‘성공 열쇠’ 의사에게 있다


“얼마 전 OOO소아과에 영유아 검진을 예약하러 갔는데 글쎄 이 소아과에 적어도 3~4번은 다닌 애기들만 봐준다는 거예요. 나라에서 무료로 해주는 검진이어서 그런 것 같다는 느낌만 받고 그냥 왔습니다. 기분이 씁쓸하더군요.” (민규맘)
“영유아 건강 검진 1차 받아 봤는데요. 님들과 똑같은 생각이에요. 병원들마다 형식적인가봐요...ㅠ,ㅠ” (조선국모) 
국내 최대 임산부 커뮤니티로 알려진 곳에 건강검진과 관련해 올라온 글들이다. 검진을 만족스럽게 받았다는 내용은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처럼 힘들다. 불성실한 진료를 넘어 환자 유인행위로 의심되는 모습도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불성실한 검진은 건강한 아이들을 발달지연 등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S소아과 원장은 “약 보름 전 12개월 된 아이를 둔 엄마가 다른 의료기관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아이의 발달이 4개월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걱정스런 얼굴로 찾아왔다”며 “다시 제대로 검진을 해보니 한 가지 사항 외에는 모두 정상으로 나와 문제 될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문진표과 발달평가도구를 처음 접하는 엄마가 기입한 내용만 대충 보고 내린 결과”라며 “일부 의사들이 수가가 적고 시간에 쫓긴다는 이유로 없는 병도 만들어 낸 경우”라고 꼬집었다.
건강검진 제도의 활성화를 위해선 의료진의 성의 있는 진료 태도가 절실하다는데 의료계도 입을 모은다.
대한소아과학회 신손문 사회협력이사는 “부모들이나 의료계나 모두 검체검사를 중심으로 한 건강검진에 익숙해져 있고 진료라고 하면 3분 내에 끝나는 것을 생각하지 30분에 걸쳐 자세히 하는 것은 서로 기대하지도 않는 것이 현실”이라며 “의사들이 아이들 감기약만 처방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건강을 책임진다는 데 의미를 두고 건강검진을 서비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치과 구강검진은 사각지대


한편 건강검진의 3·5차에 각각 실시하는 치과 구강검진은 수검률만 보면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치과 검진기관은 의료검진기관과 달리 지정제가 아니라 자율적으로 하고 있는데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구강검진율은 8월 초 기준 검진대상의 10%도 안 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윤이영 차장은 “치과의사협회에 따르면 전국에서 구강검진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은 약 900여 곳으로 적은 편이고 검진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라며 “치과 검진은 예방효과가 가장 크지만 치과계의 의식 부족으로 수검률이 낮다”고 설명했다.
내년 3월 건강검진기본법이 시행되면 치과도 지정제로 전환된다고 하지만 검진기관으로 신청하지 않으면 그만이며 현재 저조한 구강검진 분위기가 지속될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다.
대한치과의사협회 박영섭 치무이사는 “구강검진 차트 기입이 상당히 복잡해 기입하는 데만 15~20분이 걸리고 검진비를 청구하는 것도 건강보험과 차이가 있어 현실적인 문제점이 있다”며 “게다가 18개월 밖에 안 된 아이의 치과 진료가 쉬운 일도 아니다”고 밝혔다.
박 이사는 “구강검진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와 치과계의 접점을 찾는 노력을 하고 있다”며 “치과계와 의료계는 물론 복지부, 공단 등 정부의 홍보 노력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내년부턴 부실 검진기관 ‘퇴출’


내년 3월 22일 건강검진기관의 품질을 관리해 적정 검진을 실시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건강검진기본법’이 시행되면 부실 검진을 하는 모든 의료기관은 검진기관 자격이 박탈된다.
5분만 검진하고 검진 수가만 챙기는 얌체 의료기관의 퇴출이 가능해진 것.
현재는 검진기관이 스스로 자격을 취소하지 않으면 계속 검진을 할 수 있다. 다만 부실한 검진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접수될 경우 검진비의 환수는 가능하다.
공단 윤이영 차장은 “기본적으로 아이의 입 속도 한번 보지 않고 검진을 마쳤다는 등 상담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민원이 들어온 사례에 대해 조사를 벌여 지난 7월까지 수십여 건의 진료비를 환수조치 했다”고 설명했다.
공단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약 60개 기관이 폐업, 이전 등을 이유로 건강검진 지정기관을 자진 취소했다. 건강검진기본법이 시행되면 영유아 건강검진 서비스 의지가 없는 기관들은 점차 정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건강검진에 철결핍성 빈혈검사와 만4세경에 검진을 추가하는 방안이 논의될 전망이다. 대한소아청소년과개원의사회 정해익 부회장은 “건강검진 제도 도입 전 논의됐던 사항으로 모유수유 어린이 중 6~9개월 경 철결핍성 빈혈이 올 수 있는 아이들이 있다”며 “빈혈이 오면 식욕이 떨어져 두뇌발달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선별적으로 검사하는 방안을 정부와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5차례에 걸친 검진 중 만 4세 시기의 검진이 없어 이 시기의 검진 추가도 건의한다는 방침이다.■

황운하 기자 newuna@docdocd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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